설악신문이 창간된 해에 태어난 1990년생 윤국중 씨. 그는 지난 30년간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까? 그의 기억과 삶을 통해 설악권, 그리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더듬어 본다.
이사가 잦던 어린 시절
윤 씨는 자신이 아주 어릴 적 부모의 이혼으로 다사다난한 삶을 보냈다. 어머니, 형과 함께 살며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는 ‘이사’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집에 얹혀살기 위해 거처를 옮긴 정도라고 표현했다. 몇 개월 정도 인척의 집에서 기거하다가 다른 이의 집으로 가는 식으로 그는 1년이 멀다 하고 살 곳을 바꿨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겪었던 일 중에서는 두 가지 일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아 있다. 외삼촌이 1997년 외환위기 때 사업이 기울어 외할머니와 어머니도 함께 힘들어하던 모습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 검지가 절단된 일이다. 다행히 그는 어머니의 적절한 대처로 서울에서 봉합 수술을 받고 회복할 수 있었다. 당시 의사는 봉합된 부분이 검게 변하면 수술이 실패한 거라고 말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수술이 성공적이길 바라며 특별한 종교가 없음에도 기도를 많이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교사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다. 교사들은 급우들 앞에서 그가 생활보호대상자라 급식비와 우유 간식비가 면제된다고 말하곤 했다. 교사의 말투에는 악의가 없었지만, 이런 발언은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친구들도 교사의 말을 듣고 그를 놀리곤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배구부에 들어갔다. 배구부는 신발, 가방 등의 지원이 있었기에 어린 마음에 어머니를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배구부원이 됐다.
그가 저학년일 때 그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했고 그가 고학년이 됐을 즈음 식탁이 2개인 작은 식당을 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도 마련했다. 집은 현재 속초 교동 옥수탕 인근에 있었는데 방 4평, 주방 2평에 재래식 화장실이 딸린 아주 작은 곳이었다.
그가 6학년이던 2002년 전국에 태풍 루사 피해가 컸던 때에는 그의 식구들이 현재의 석봉도자기박물관 인근에서 살고 있었는데 태풍 피해로 집이 잠겨 새벽에 어머니, 형과 함께 방안에 넘치는 물을 퍼내야만 했다.
반항심 가득했던 시기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은 잘되지 않을 때가 많아 어머니는 청소 일을 병행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는 어머니와 형이 집에 늦게 오는 관계로 가족들을 대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일로 바빴고 세 살 위인 형은 사춘기로 방황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왔다. 어릴 적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린 그에게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중학교에서는 엇나가는 일이 많았다. 조퇴나 결석을 많이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움도 곧잘 하곤 했다. 집에 들어가면 무섭고 우울해 집에 잘 들어가지 않고 친구 집에서 살기도 했다. 싸우다가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고 교무실로 불려가 맞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때 어울리던 친구들은 대부분 한부모가정, 조손가정의 아이들이었고 비슷한 사정이 있었기에 그 친구들과는 말이 잘 통했고 의지가 됐다. 중학교 때는 교사들이 매사에 그를 부정적으로 봤는데 어린 마음에 이 때문에 반항심은 더 커졌다.
다른 환경, 다른 삶의 시작
중학생 때 반항심이 가득했던 그는 고등학교에 가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됐다. 어머니와 외삼촌이 “학교생활에 성실하라”고 당부했고 자신도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적응하고 싶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반장을 맡았고 2학년 때에도 반장을 지냈다.
고등학교에서는 반항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중학교 때 같이 놀던 친구들과 묶여서 억울하게 혼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3학년 때에는 전교 부회장이었다.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던 덕분에 선거에서는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다. 그는 전교 부회장으로서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위해 노력했고 연극부를 직접 만들어 50명의 부원을 모았다. 이 연극부 활동을 통해 현재의 소울씨어터 대표인 남호섭 씨를 지도교사로 만날 수 있었고 이때의 인연이 이후 윤 씨의 삶을 바꿔놓았다.
고교 졸업 후 그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여행을 자주 가고자 했다. 강릉, 춘천, 서울, 부산 등 전국 여러 곳을 찾으며 세상 구경에 재미를 붙였다. 그는 해외여행은 가지 못했고 국내만 돌았을 뿐이지만 세상이 참 넓다고 느끼게 됐다. 그리고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강원도 외딴 고교에서 외모, 집안, 공부, 싸움 등으로 서열을 매기던 일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연극인 윤국중
스물두 살 때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이던 어느 날 남호섭 대표한테서 연락을 받으면서 그는 연극인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극단 청봉의 연극 <배따라기>에 출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울씨어터 창단에 참여했다. 소울씨어터가 창단됐을 때 그는 소속된 곳이 생긴 사실에 무척 기뻤다.
극단은 창단된 지 2년쯤 후에 연극협회에 들어갔고, 2014년 처음 참가한 강원연극제에서 <가보세>라는 작품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이후 소울씨어터는 순조롭게 성과를 거둬나갔다. 2015년에는 <임대아파트>로 강원연극제에서 은상을, 2016년에는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카운터포인트>로 금상을, 2018년 강원연극제에서는 <만주전선>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 사이 배우 윤국중은 다른 극단의 연극에서도 배역을 맡는 등 보폭을 넓혔고 2017년에는 한국연극협회 강원지회의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6월 26일>이란 작품을 통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춘천 등 국내뿐만 아니라 러시아, 일본에서도 공연하며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했다.
속초 연극계가 전국적인 명성을 쌓아왔기에 윤국중 배우 역시 속초연극인으로서 자부심이 크다. 하지만 공연 기회가 많이 없다는 점은 속초의 연극인으로서 매우 아쉬운 점이다. 관객과 밀접하게 호흡할 수 있는 소극장이 없고 배우, 스텝, 조명, 영상 등 관련 업체를 지역에서 섭외하기 어려운 점은 속초 연극인의 애로사항이다.
예술계 종사자들이 그렇듯 윤국중 배우 역시 경제적으로 좋은 처지에 있지 않다. 그는 타지에서도 활동하며 연극계에 점점 입지를 넓혀온 덕에 작년에는 배우로만 일해도 먹고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로 인해 공연과 연극제가 취소되면서 그의 계획이 뒤틀렸다. 현재는 어머니의 두부공장과 형의 가게 일을 도우면서 버티는 중이다. 가족의 일이 다 잘 풀린 상황이라 이제는 가족 중 자신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한민국, 그리고 속초에서 연극배우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연극인 초년생 시절 그는 연극을 ‘관객의 즐거움을 위한 라이브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연극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연극이란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교감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이런 목표를 향해 대사와 몸짓을 더욱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극을 본 이들의 기억에 남고 그들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연극을 추구합니다. 때로는 관객들이 마냥 즐겁기보다 불편함을 느끼고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영화 <기생충>이 그렇잖아요.”
올해 만으로 서른이 된 한 연극배우가 다사다난했던 삶을 거쳐 이제는 성숙한 예술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이 젊은 배우가 몇 년 후에도 연극계에 있을지, 그리고 우리 지역에 있을지는 지역 환경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이 한 젊은 배우의 다음 행보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는 이 배우와 동갑인 서른 살 청년 <설악신문>에도 마찬가지이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윤국중 배우가 출연한 <6월 26일>의 한 장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