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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 6.25전쟁 전투전적비 탐사보고서
등록날짜 [ 2020년06월01일 11시17분 ]
이 고지 저 능선, 오랜 세월 익숙한 길이다. 만28년을 현역부사관 1천여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3군단, 8군단 예하부대 방문으로 수 없이 오갔던 길이다. 익숙함에 무심코 지나쳤던 길이다. 반성하는 마음에서 지난 5월 12일 지인들과 함께 향로봉에서 펀치볼까지 6.25전쟁 전적비 탐사를 다녀왔다. 이를 계기로 한국보훈선교단 속초지회가 5월 28일에, 필자의 출석교회에서 6월6일 현충일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렇게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전쟁 70주년 전투전적비 순례를 3번 연속으로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자연스레 필자가 가이드를 맡게 되었다.
 1차 탐사는 원래 계획에는 없는 구성리, 마좌리, 탑동리 군부대를 지나 대대리 510-8 베트남 참전 기념탑 방문부터 시작했다. 위성지도 제한으로 베트남 참전 기념탑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실제로는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공적비’(2005)와 ‘월남전 참전기념탑’(2004)이 함께 있다. 때마침 현장에서 사무국장을 만나 설명도 들었다. 방문과 관심에 연신 고마워했다.
 해상리와 장신리 부대를 거쳐 진부령정상 흘3리 산1-18번지 ‘향로봉지구전투전적비’(1957)를 방문했다. 향로봉 전투는 1951년 8월 18일부터 9일간 6·25전쟁이 교착전 단계에서 국군 제1군단과 미10군단이 해안분지 동측의 북한군을 격퇴한 ‘포복작전’이다. 그러나 설명판에는 국군의 전과기록만 있어 아쉬웠다. 옆에 1956년 통고지설(通高之雪)에 희생당한 ‘설화희생충혼순국비’와 1633년 조선인조때 간성현감 이식(澤堂李植)의 ‘진부령 유별시’도 함께 있다. 
 하산 길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산262-1에 ‘연화동전적비’(1998)를 방문했다. 1996년 9월 강릉잠수함침투무장공비  25명 가운데 잔류도주자 2명을 사건발생 49일 만에 사실한 최후 섬멸지이다. 그러나 연화동 안보전시관도 찾는 이가 거의 없어 폐문상태였다. 지척에 용대3리 마을회관 뒤로 ‘백골병단전적비’(1990)가 날카롭게 서 있다. 6.25전쟁 최초유격대인 ‘백골병단’ 전공을 기념하여 건립하였다. 백골병단은 후방교란의 유격활동으로 많은 전과를 세웠으나, 설악산 지구에서 적의 협공으로 보급로가 차단으로 허기져 동사하여 절반만 귀환하였다.
 지휘관 채명신 중령의 일화가 감동적이다. 3월 18일 필례 인근에서 대남유격부대 총사령관 길원팔 중장을 생포했으나 전향거부로 권총자결을 허락하고, 적장이 부탁한 10살짜리 전쟁고아를 동생으로 입적하였다. 동생은 훗날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한국전쟁사의 휴머니즘 ‘부탁과 약속’이다. 사람들이 “실탄을 건네주고 나올 때 길원팔이 뒤통수를 쏠 것이라는 걱정을 안했나”라는 질문에 채장군은 “하나님이 방패가 되는 걸 믿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다”고 답했단다.
 자동차가 어느새 서흥리, 천도리, 서화리의 서화축선을 지나 해안면 펀치볼에 도착했다. 매번 서화리를 들어서면 전방분위기가 물씬 난다. 양구전쟁기념관은 볼 수 있었지만 12사단이 관할하는 을지전망대, 제4땅굴 관람은 코로나19 때문에 통제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도솔산지구 전투전적비를 찾아 나섰다. 도솔산지구는 1951년 6월 미해병대 제1사단과 임무 교대한 우리 해병대 제1연대가 공격을 개시하여 17일간의 혈전 끝에 완전 탈환하여 해병대의 용맹을 떨쳤다. 적 3,263명을 사살하였고, 아군도 700여명 사상을 입었다. 안개와 영하의 체감온도로 정상 1,148고지에 있는 ‘도솔산전투전적비’ 대신 ‘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를 돌아보았다.
 양구군 월운리에 있는 6.25전쟁 최대 격전지인 ‘피의능선전투전적비’와 ‘펀치볼지구전투전적비’는 사전답사 때는 시간상 들르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인제군축령에 있는 ‘인제지구전적비’(1958)와 리빙스턴 소령의 안타까움이 남아있는 ‘빨간다리’도 들렀다. 인제지구전적비는 인천상륙작전으로 국군이 수복하였으나 1.4후퇴로 다시 북한군에게 내주었다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막아낸 전투현장이다. 여러 차례 도로공사 때문에 전적비도 많은 수난을 겪었다.
 거기서 다리 건너면 고사리에 ‘매봉한석산 전투전적비’도 있는데 일정에 아쉬움이 많다. 돌아본 전적비 순례코스는 필자 제자들의 소속부대와 관련 있는 곳들이다. 설악권에는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찾는 이가 없는 전적비가 많다. 6월을 맞아 도문동 충혼탑, 설악산 소공원에 있는 설악산지구전적비, 이름 모를 자유용사비, 장사동 해양경찰 충혼탑도 돌아볼 것을 권면한다.
 필자 연구실문에 행사 때 사용하는 손 태극기가 꽂혀있다. 정치가 태극기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은 집집마다 성조기를 내건다. 우리는 6.25전쟁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북침 주장의 역사의식에 저주가 있다. 저주는 ‘불가피성의 선언’이다. 경고를 무시해서 자초한 결과가 저주다. 길 없음 경고를 무시하면 죽음이다. 역사왜곡은 저주를 자초한다. 역사를 바로보자.
최철재
경동대 교수·한국보훈선교단 속초지회장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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