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속초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것이 갯배이다. 속초항 수로 사이를 남북으로 잇는 도선인 갯배는 바닷가 도선으로는 전국에서 유일하며, 실향민의 도시 속초의 문화상징으로 자리잡았다. 30년간 발간된 <설악신문>에서 갯배의 변천사를 어렵지 않게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설악신문>에는 언제 처음 갯배 관련 기사가 실렸을까? 창간을 2주 앞둔 1990년 5월 12일 <속초신문> 창간예비호가 발간되었다. 바로 창간예비호 1면에 속초의 상징으로 갯배 풍경이 칼라 사진으로 실렸다. “실향민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급변하는 현대화 물결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실어 나르는 청호동 갯배”라고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 갯배와 같이 지역언론의 자리를 지키면서 단절된 공간을 이어주는 소통의 매체로서 소임을 다하겠다는 지역신문 창간의 취지가 이 사진에 담겨 있다. 이 사진은 1990년 5월 28일자 <속초신문 창간호>에 실린 “실향민들 제2의 고향-청호동”기사에 다시 게재되었다.
그리고 다음 갯배기사는 1990년 8월 20일자 <속초신문> 6호에 갯배를 끄는 도선장 김재진씨의 삶을 다룬 기획기사로 실렸다.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갯배꾼 김씨의 하루는 아침 5시 오징어 건조인들을 실어나르면서 시작된다. 함께 갯배를 끌던 사람들이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모두 떠나 버려 일하기가 더욱 힘에 부친다는 김씨. 예전에는 4명 정도 있어 교대로 갯배를 끌었는데, 지금은 김씨 혼자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밤 11시 마지막 갯배를 타고자 쫓아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간혹 아슬아슬하게 배를 놓친 사람들을 위해 뱃머리를 되돌리기도 한다.
김씨는 하루의 일기를 알려 주는 기상대이자 하루의 어획량을 알려주는 청호동 어민들의 소식통이다. 김씨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지만 그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관광객들에게 딱딱하게 굳은 손바닥을 보여주기도 한다. 갯배를 끌기 전에는 극장 포스터 붙이는 일을 했다는 김씨, 8년 동안 갯배를 끌다보니 배삯을 받을 사람과 안 받을 사람을 신기하리만치 척척 구별해 낸다. 하루 4천원 벌이. 일은 힘들고 보수가 적어 모두 떠나 버려 김씨만 오늘도 묵묵히 갯배를 끌고 있다.
갯배는 1993년 청초호 신수로 개설사업이 확정되면서 구수로 매립과 함께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되었다. 1994년 1월 10일자 <설악신문>에서는 “속초의 명물이자 주민들의 꿈과 애환을 실어 나르던 갯배가 사라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계획에 의하면 신수로 개설이 완료되는 1998년부터 구수로 매립이 시작되어 갯배도 없어질 예정이었다.
다행히도 구수로 매립계획은 철회되었다. 1995년 10월 2일자 <설악신문> 1면에는 “청초호 구수로 매립 비현실”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가 실렸다. 최창영 속초시의원이 9월 20일 열린 속초시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1998년부터 항만청에서 착수하기로 한 청초호 구수로 매립계획은 불합리한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신수로가 개설되어도 청초호 해수의 6~7%밖에 교체되지 않아 호수정화에 큰 효과가 없고, 구수로를 매립하면 태풍 등 긴급상황이 발생해도 청초호와 북항(동명항) 사이로 선박이동이 불가능해진다”라며, 수로매립계획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의견이 반영되어 구수로 매립 계획이 철회되었다.
도선장 못 구해 이용자들이 끌기도
1990년대 초반 갯배 운행은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1988년 재향군인회에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속초시에 갯배 운행을 반납하고, 청호동 개발위원회가 갯배를 위탁받아 운행했다. 하지만 경영상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1995년 7월 10일자 <설악신문>에는 “갯배, 끌 사람이 없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시로부터 1년에 1천4백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지만, 요금징수요원 1명과 2명의 도선장, 두 번의 보수비용 등을 감안하면 갯배 운영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보도했다. 두 척의 갯배 중 한 배의 선장을 수개월 째 구하지 못해 이용자들이 자체 견인하는 실정이었다. 도선장을 구하려고 하루 8시간 근무에 월 60만원의 조건으로 모집광고를 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1996년 8월 5일자 <설악신문>에 갯배가 새롭게 단장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갯배 청호1,2호를 10년마다 받는 정기검사에 맞춰 낡은 바닥도 바꾸고, 철재 난간도 도색하고, 승선자의 안전을 위해 배 앞뒤에 개폐식 철문도 매달았다. 야간 운항 때 선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매달아 놓던 남포불(석유초롱불)도 현대식 자기발광등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2년도 안 되어 목선 갯배가 폐기되고 1998년 6월부터 새롭게 건조된 FRP선 갯배가 운행을 시작했다. 1998년 4월 27일자 <설악신문>에는 그동안 운행하던 목선 갯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6월부터 새로 만든 FRP선 갯배가 운행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운행 중인 목선 갯배는 지난 1975년에 건조되어 23년간 운행해 왔는데, 규정상 15년이 지난 1990년에 이미 폐선처리를 해야 했는데 교체가 지연되었다. 교체된 목선 갯배를 1999년 국제관광엑스포 때 청초천 하구에서 운행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환경단체와 찬반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00년 10월에는 KBS2 TV 인기드라마 ‘가을동화’가 전국을 강타했다. 드라마에서 비극적 결말을 예고라도 하듯이 주인공 남녀가 서로 다른 갯배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나왔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갯배를 찾아왔고, 중국과 대만, 동남아 관광객들이 찾는 한류 명소가 되었다.
2000년 10월 속초민예총에서 갯배 다큐영화를 만들었다. 민예총 속초지부 영화위원회 염기명감독이 1999년 12월부터 다큐영화 ‘갯배’를 10개월에 걸쳐 제작해 2000년 10월 3일 KBS속초방송국 공개홀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총 78분 분량의 다큐영화 ‘갯배’에는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의 삶이 생생한 영상으로 담겼다.
이 무렵 <설악신문>에는 흐뭇한 갯배 이야기 2건이 실렸다. 2000년 4월 7일 돌풍으로 갯배가 운항되지 않자 속초해양경찰서에서 버스를 동원해 청호동 거주 43명의 학생을 안전하게 등교시켰다. 2000년 12월 21일 오전 9시 청호동에서 중앙동으로 운행하던 갯배가 반대편에서 오는 갯배와 부딪혀 청호동 장순녀 할머니(75세)가 물에 빠졌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청호동에 사는 김용화 속초수협장이 양복에 구두를 입은 채로 한겨울 추운 물속으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조했다. 김 수협장은 장 할머니를 집에 데려다 주고 병원비 10만원까지 지원해줬다.
신수로 교량으로 운행구간 좁아져
2001년 7월 4일 중앙동쪽 갯배 선착장이 동북쪽으로 2백미터 떨어진 구 제일극장 옆으로 옮겨갔다가 2003년 7월 15일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때 신수로 교량이 들어서면서 1백미터에 이르던 갯배 운항구간이 절반 수준인 56미터 정도로 좁아졌고 청호동 갯배선착장은 높은 교량구조물로 인해 다리 밑으로 통행하게 됐다.
2001년부터 8년간 속초 지역축제인 설악문화제에서 갯배끌기대회가 진행되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은 육상인 행사장에서 동대항 갯배끌기대회가 열렸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청초호 남쪽 수상에 갯배를 띄워 전국갯배끌기대회가 열렸다. 대회 기간 이외에도 관광객들이 직접 끌어보는 갯배체험장이 운영되어 인기를 끌었다.
2010년 4월 18일 KBS 2TV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갯배와 아바이마을이 소개되면서 갯배를 찾는 관광객은 더욱 늘어났다. 그리고 2012년 11월에는 청호동 갯배 선착장 일대에 실향민의 생활상과 북청사자조형물, 가을동화 포토존 등 휴식문화공간이 조성되었다. 조명시설로 신수로 교량 아래 어둡던 갯배선착장 입구 공간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곳에서 각종 문화예술 전시와 공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7년 11월 15일 다시 건조한 갯배가 새롭게 운행을 시작했다. 2015년 선박안전법 개정으로 갯배의 승선인원이 33명에서 12명으로 줄어들어 관광성수기에는 장시간 승선대기로 불편이 컸다. 이에 길이 9.5m, 승선정원 32명 규모로 갯배를 새로 건조하게 됐다. 아울러 갯배 이용요금도 10년 만에 인상됐다. 2017년 11월 1일부터 소인은 100원에서 300원, 대인·손수레·자전거는 200원에서 500원으로 인상됐으며, 속초시민은 신분증을 지참하면 무료 이용이 가능해졌다.
수십 년간 단절된 수로를 넘나들며 소통을 이어온 갯배와 같이 설악신문도 단절을 잇는 지역주민의 소통 매체로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30년 전 속초신문 창간예비호에 실린 갯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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