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는 70~80년대 일자형태의 성냥갑처럼 지어진 일명 성냥갑 아파트가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주상복합아파트가 생기면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었다. 속초는 더욱 심각했다. 설악산과 동해바다라는 자연환경이 고층건물의 스카이라인으로 대체된 것이다. 도시경관에 대한 경각심은 개인의 재산권과 도시발전이라는 명분을 이기고 속초시 도시계획 조례의 개정으로 이어졌다.
건축물의 경제성 향상을 위한 초고층화는 도시경관을 통한 도시정체성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도시경관은 단순히 자연경관이나 건축물처럼 보이는 풍경만은 아니다. 그 풍경에 내재된 자연생태계와 주민의 문화적 활동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세계의 주요도시는 도시의 정체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연환경과 역사문화를 활용하고 도시경관을 조율하기 위한 엄격한 조례를 만들고 있다. 그중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역사문화경관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특성을 강화하고 체험할 수 있는 도시경관 계획이 있어야 한다. 속초의 경우 청호동 아이파크 아파트는 후기 구석기문화와 석기제작소, 철기시대 마을유적이 발굴된 곳이다. 아파트 측면에는 성황당이 있다. 동해바다와 청초호라는 입지조건 때문에 선사시대 주거지였고, 바다를 매개로 살아갔던 실향민의 마을이라는 역사문화적 특징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경관의 방식이 중요하다. 서울시를 비롯한 주요 지자체의 도시경관 계획안은 이러한 목표와 전략이 함께 담겨 있다. 향후, 북부권에 건설한다는 초고층 아파트는 동명동 성당과 속초성지가 인근에 있다. 장소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문화접근이 필요하다.
아파트 문제점 해결 과제 제안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_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2013)는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주석처럼 보인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아파트의 역사이다. 식민지 경험, 참혹한 전쟁이 남긴 물질의 폐허 위에 ‘근대화’에 대한 일념, 중산층 욕망의 서사 속에 쌓아올린 ‘콘크리트 유토피아’이다. 이 책은 욕망의 주체인 중산층을 각각 1955년생, 1962년생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 세대인 1990년대, 2000년대의 상황을 보여주며 우리시대의 문제점을 환기시킨다. 대출과 사교육비, 등록금, 명예퇴직, 취업난, 비정규직, 아파트 가격 폭락의 두려움까지 당대의 문제점을 아파트 공화국의 시선에서 해부한다. 더 이상 고성장할 수 없는 시대, 계급의 사다리를 뛰어넘을 수 없는 시대에 아파트는 행복이자 고통이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의 굴레이다.
아파트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해석하기 위한 시도는 속초에서도 유효한 수단이 된다. ‘속초 동명동 일대 새 아파트 부촌으로 탈바꿈’(동아일보, 2020년 3월 19일자) 같은 기사는 상품가치와 계급의 상관관계 속에 아파트를 위치시킨다. 아파트 불로소득, 단지화에 따른 배타적 우월성, 고립된 개인 등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속초의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수도 있다면 너무 지나친 우려일까.
박인석의 <아파트 한국사회>는 아파트를 당대의 현실로 놓고 해결과제를 제안한다. 아파트는 일반 주택에 비해 좋은 거주환경이다. 상품가치 확대를 통한 재산증식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사용가치가 아닌 상품가치로만 전환되면서 비효율적인 주거양식과 삭막한 주거환경을 만든다고 지적한다. 발코니의 확장이나 거실 공간의 비효율성, 꽉 막힌 콘크리트 외관은 아파트를 주거가 아닌 상품의 가치에 집중한 결과이다. 또한, 아파트는 그 거주자에게만 삶의 편리를 제공하면서 담장 밖과의 배타적 관계를 만드는 곳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아파트를 상품가치가 아닌 주거가치로 전환하기 위한 여러 가지 소소한 방안을 제시한다. 담장을 허물거나 발코니를 바꾸면서 다양한 개인이 모여 사는 공간임을 확인하게 하고 그물망구조를 회복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공동주택 커뮤니티 사례 발굴
대도시에서는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공간의 문제점을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왔다.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는 90년대 초기 주거공간의 하자보수 등 당면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거주민과 지역 시민단체가 함께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슬로건으로 생활중심 삶터로서의 가치에 의의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2015년 공동주택관리법이 제정된 후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에 관한 내용이 명시되고 지자체의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이 확대되면서 입주민들이 함께 소통하고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아파트가 갈수록 늘고 있다. 공동주택의 커뮤니티를 위하여 공모사업을 실시하고 커뮤니티 전문가를 발굴하며 우수사례 경연대회와 사례집을 발간하는 것이다. 공동체 공간 조성, 소식지 발행과 홍보, 야외 음악상영, 음악회, 교양강좌 추진 등이 이 사업을 통해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 활동은 주민 참여의식을 통해 공간의 만족도를 높이고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강화시킨다. 특히, 아파트 커뮤니티는 친환경 재활용과 에너지 절약 등 지속가능한 사회문제를 환기하며 지역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그동안 속초의 아파트 문화는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기간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고 도시경관은 물론 공간의 해체가 급격히 이뤄지고 있다. 도시문화로서의 ‘아파트’ 공동체와 도시정체성으로서의 ‘아파트’에 대한 고민, 대안과 실천이 필요하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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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리학자가 한국 아파트 문화 분석
■‘아파트 공화국’
(저자 발레리 줄레조, 후마니타스, 2007)
프랑스 지리학자가 한국 아파트 문화를 분석한 책. 저자는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가 확대재생산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경제, 사회문화적 시선이 융합된 관점은 이방인의 시선뿐만 아니라 한국의 내재적 관점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아파트를 통해 한국의 근대화와 현대성의 문화적 양상을 분석한 대목은 독창적이다. 아파트 주민과 경비실 근무자와의 인터뷰, 각종 통계자료와 한국의 역사까지 넘나드는 성실함은 논리를 튼튼하게 뒷받침한다. 단순히 과거를 분석하지 않고 대한민국 아파트 단지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문제점과 해결과제까지 자세히 설명하면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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