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제 집사람이 해녀입니다”
장사동 해녀횟집 광고
1991년 3월 11일자 <속초신문> 8면 하단에 실린 장사동 해녀횟집 광고. 빈 여백과 정감 있는 카피, 간결한 내용과 간단한 이미지로 3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띄는 광고이다. 이 광고에는 당시 관광지 속초의 시대상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광고기법을 시도한 젊은 신문인들의 노력도 함께 담겨있다.
1990년 창간된 <설악신문>은 당시 주요일간지의 세로쓰기와는 달리 2년 전에 발간된 한겨레신문의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편집 스타일을 본받았다. 그리고 감성적 문구를 통한 설득형 광고를 시도했다. 장사동 해녀횟집 광고도 바로 이런 스타일로 만들어진 광고이다. 이런 광고기법은 1976년 이후 한창기씨가 발간했던 문화잡지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에서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 <설악신문>은 보도성 기사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와 인물 발굴에 많은 면을 할애했다. 지금까지 언론이 미처 주목하지 못한 지역주민의 삶과 문화에 보다 가까이 접근했다. 1990년 7월 6일자 <속초신문> 4호에는 제주도에서 올라와 이곳 속초에서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들의 삶을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3월에 해녀를 소재로 한 횟집광고가 신문에 게재되었다. 고단한 서민의 삶의 모습으로 부각된 해녀가 횟집의 광고 소재로 등장했다. 서민의 고단한 삶의 가치를 재발견한 셈이다.
“제 집사람이 해녀”라는 카피의 해녀횟집의 광고는 지역 음식업 변천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관광지 속초에는 1970년대부터 횟집이 들어섰지만 지금처럼 어민가족들이 경영하는 횟집은 없었다. 수산업과 음식업이 분리되었다. 그러다가 연근해에서 활어 어획이 일반화되자 1990년대에는 대포항과 동명항 일대에 어민가족들의 활어난전이 형성되어 일반횟집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때 어민가족이 직접 운영하는 횟집들도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해녀횟집도 어민가족이 운영하는 횟집의 한 곳.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런 광고를 보면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일본서 넘어온 속초신문 창간 1주년 축하광고
고성출신 재일동포 한녹춘씨
어렵게 1주년을 맞은 1991년 5월 27일 <속초신문> 31호 1면 하단에는 낯선 광고 하나가 칼라로 실렸다. 재일거류민단, 후지관광(富士觀光)주식회사 한녹춘(韓祿春) 사장의 이름으로 실린 창간 1주년 축하광고. 광고문구에는 “이국 멀리 일본에서 접하는 속초신문, 마치 뜨거운 여름날 고향의 우물에서 퍼마시는 시원한 물맛같은 느낌입니다”라는 감회가 적혀있다.
한녹춘씨는 어떤 사람일까? 당시 광고가 게재된 <속초신문>에서는 추가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인터넷에서 한녹춘이나 한록춘을 검색하면 지난 2010년 2월에 발간된 <월간조선>인터뷰 기사를 비롯해 몇몇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월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2010년 당시 90세인 한씨는 강원도 고성군 출신으로 13세에 흥남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20대에 일본 최대 카바레인 후지카바레를 설립하는 등 큰 재력가로 자리 잡았다. 후지관광 주식회사 회장이며 재일본 오사카 민단 고문으로 지난 1971년 우리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한씨는 1971년 오사카총영사관을 설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씨는 오사카 중심부에 청사를 준공하기 위해 건립기성회 회장을 맡아 재일동포의 모금활동을 주도했다. 특히 토지주가 한국인에게는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자 한씨는 일본인 부인 이름으로 157평 부지를 매입해 청사 건립을 가능토록 했다. 재일동포의 모금으로 지어진 청사는 준공과 동시에 대한민국정부에 기증되었다.
한씨는 1960, 70년대에 속초와 고성을 수차례 방문해 속초에 살고 있는 여동생과도 만났으며, 고성군으로부터 명예군민증도 받았다. 부친의 묘소가 민통선 안에 있음을 뒤늦게 확인했지만 생전에 성묘는 가지 못한 걸로 전한다. 1999년 강원국제관광엑스포 개최에 큰 도움을 줘 강원도 명예도민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1998년에는 강원도에 장학기금을 내놓아 지금도 해마다 강원도청 직원 자녀에게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한편 한씨는 일본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랫동안 야쿠자 조직에 몸을 담았다고 전한다. 한녹춘씨는 지난해인 2019년 8월 사망해 민단 오사카지방본부 차원에서 추도식을 거행했다.
한편 1991년 5월 20일자 <속초신문> 30호 1면에는 일본 오사카민단 황칠복 지부장의 창간1주년 축하광고가 실렸다. 황칠복씨는 1977년 속초시에 7천만원의 거금을 기부해 문회회관의 전신인 일복문화회관을 건립토록 했던 인물이다. 일복문화회관 이름은 당시 정일권 국회의장과 황칠복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렇듯 <설악신문>은 멀리 나가있는 출향인들에게 고향소식을 전할 뿐만 아니라 국경 너머 출향인들의 소식까지도 지역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91년 3월 11일자 속초신문 20호 8면 하단에 실린 장사동 해녀횟집 광고.
1991년 5월 27일자 속초신문 31호 1면에 실린 고성 출신 재일동포 한녹춘씨의 축하광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