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그의 책 <유럽도시기행>에서 도시라는 텍스트(text)도 해석을 요구하는데 그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콘텍스트(context)가 필요하다고 했다. <설악신문> 창간 30년. 그 세월동안 속초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 아파트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었고, 골목길은 사라져갔다. 실향의 도시는 평화를 노래하고, 닭강정은 대표 음식이 되었으며, 구 속초수협은 청춘의 도전공간으로 변신했다. 지금 이곳의 문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도시의 길과 공간을 해석하기 위해 한권의 책을 갖고 길을 걸을 예정이다. 아파트와 반공주의, 도로망의 확충과 에코뮤지엄, 환대의 철학까지 속초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당대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한 시도이다.
속초 첫인상 바뀌어…주범은 아파트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속초 첫번째 이야기의 시작은 고속버스터미널이다. 외부인의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무는 곳, 그래서 터미널은 도시의 첫인상이라고 불린다. 전주시는 전주역이 있는 곳의 길이름을 ‘첫마중길’이라 부른다.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주시의 이미지와 추억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전주역에서 명주골 사거리 간 백제대로를 ‘전주 첫 마중길’이라 이름 붙이고 곡선의 유려함을 강조했다. 야간경관을 설치하고 이벤트 밀도를 높여 머무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첫인상에서 느낄 수 있는 도시이미지를 도시의 정체성과 연결시키고 브랜드를 통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은 걸어서 1분 안에 바다로 갈 수 있는 터미널이다. ‘걸어서 10분’, 역세권을 강조하는 대도시 아파트의 과장된 카피에 비하면 1분이라는 시간조차 용납 안 되는 공간이 속초고속버스터미널이다. 마음 급한 방문객이라면 한달음에 동해바다를 볼 수 있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의 끝자락에 병풍처럼 펼쳐진 울산바위가 설악의 수려함만큼이나 당당하다. 청초호가 지근거리에 있음을 안다면 속초 고유의 모습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첫인상이 바뀌고 있다. 주범은 아파트이다. 아파트는 바다로 가는 길목, 산에 머무는 시선에서 전봇대의 전선줄마냥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도 37층 주상복합아파트 건설 공사가 거의 마무리에 이르렀다. 그 옆에는 속초에서 최초로 억대 프리미엄신화를 만든 아이파크 아파트가 있다. ‘속초 바다를 볼 수 있는 파노라마뷰’라는 조망권과 투자가치가 만든 광풍의 시작이었다. 아파트에 당첨되고도 ‘오백만원’밖에 프리미엄을 받지 못했다는 사무실 동료의 투덜거림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파트 불패신화’라는 유령이 속초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은 그 욕망의 시작을 꼼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그에 의하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의 아파트 열풍은 권위주의 정부가 재벌과 손을 잡고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면서 만들어 낸 한국형 발전모델의 압축적 표상이다. 프랑스의 경우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재분배의 측면에서 아파트 정책을 펼쳤다면 한국은 양적 성장 그 자체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장기임대주택은 거의 없고 주택 매매정책만 있는 한국에서 주택의 소유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아파트 정책이 사회문제화되었지만 한국형 아파트 정책은 1960년대부터 불패신화를 써오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중산층’이라는 욕망의 서사에 부합하는 정책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권위주의 국가는 중간계급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그들에게 주택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으며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즉,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과 주거에 따른 중산층의 욕망이 정치적 요구와 얽히면서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아파트 열풍
속초 최초의 아파트는 주공1차 아파트이다. 1979년말 5층 규모의 10개동으로 지어졌다. 13평형 400세대가 입주했다. 타 도시에 비해 많이 늦었다. 중소도시에 포함되었지만 1차 산업 의존도가 높았고 일자리가 부족했다. 70년대 도로망 확충, 80년대 국민여가시대가 열리며 관광업이 활성화되었고 본격적인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1981년 속초관광수산시장 내에 있던 중앙극장이 철거되고 상가아파트가 건립된다. 1983년 청학동 금강아파트가 준공되면서 속초의 주거공간도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이 증가한다. 하지만 증가세가 가파르지는 않았다. 도시화의 속도가 더디었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조양동에 택지개발을 한다. 조양동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곳이었다. 속초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선사유적지도 이 당시 발견되었다. 조양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면서 아파트 건립이 본격화되었다. 주택의 노후화가 불편했던 거주민과 핵가족에 의한 소인가구의 증가 등 소규모 주거공간의 필요성이 주된 이유였다.
투기자본에 의한 불로소득의 욕망도 이때부터 엿보인다. 1990년 중앙일보 기사 <동해안 일대 돈 없는 ‘억대부자’ 양산(부동산투기 열병:2)>(1990. 4. 12)에는 속초지역의 임야에 이어 아파트에까지 투기붐이 일어나고 있음을 걱정하는 기사가 실린다. 1년 내내 사용할 수 없는 콘도 대신 아파트를 사두고 아무 때나 별장으로 사용하려는 외지 사람들이 많다면서 조양동 설악비치하우스의 경우 71가구 중 34가구,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인 설악타워맨션(13층)도 68가구 중 절반 이상, 5월 완공예정인 설악빌리지도 2백66가구 중 속초사람은 2사람뿐이라고 조사되었다. 또한, 외지인뿐만 아니라 현지인도 부동산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산층, 농촌지역까지 부동산 투기심리가 확산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2,000년대 들어 쌍다리를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이라는 자조 섞인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주거환경이 마련된 조양동은 강남이고 구도심에 해당하는 다른 지역은 강북이라는 말이다. 잘 구획된 아파트 단지와 편의시설의 확충이 만들어낸 말이다.
<아파트 공화국>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와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속초에도 상징자본으로 떠오른 ‘아파트’와 ‘중산층’의 계급 사다리가 급격하게 놓인 것이다.
불로소득, 투기자본과 함께 몇 가지 문제가 더 발생했다. 속초의 도시특징에 따른 스카이라인의 붕괴가 가시화된 문제라면 기존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 사이의 문화공동체 괴리, 아파트 공동체문화의 폐쇄성은 다가올 미래의 문제였다.
<다음 호에 계속>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밑 속초해수욕장 주차장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31층 2개동 주상복합아파트와 29층 6동으로 구성된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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