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별’을 건물 바깥에서 보면 특별한 것이 없고 약간 어수선한 느낌이다. 건물 왼쪽에 칙칙한 천막이 덮인 조립식 건물이 있고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1층 음식점의 커다란 돌출 간판이 생뚱맞게 시선을 모은다. 적어도 건물 밖에서 도자기별이 위치한 건물을 보면 발길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서 3층 카페로 들어서면 입이 벌어지는 바다 광경이 펼쳐진다. 바다에 대한 감흥이 무뎌진 바닷가 출신이 아니라 내륙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라면 도자기별에서 바라본 풍경이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고성 봉포 해변에서 도자기별을 운영하는 이는 공재영(37)·재윤(32) 자매이다. 이곳은 공방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데, 자매는 이전에 속초초등학교 인근에서 공방을 운영했었다. 언니 재영 씨는 학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디자인과 도예를 함께 배웠고, 동생 역시 도예를 전공했다. 공방을 열기까지 자매는 이 시대 많은 청년이 그러하듯 쉽게 넘어서기 힘든 현실의 장벽 앞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았다.
도예 전공 자매의 현실 벽
대학 졸업 후 자매의 직장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재영 씨는 첫 직장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디자인회사였는데 상사와의 갈등이 심해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퇴사했다. 그리고 서른이 다 되어 대학원을 다녔고 이후 기간제 교사로 일했다. 기간제 교사는 처우가 열악했고 정규직 교사가 되는 길은 너무도 멀어 보였다. 정규직 교사가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가면 이미 내정자가 있어서 눈물을 삼키는 일이 여러 번이었다. 한번은 한 사립학교 교직원 채용에 응시해 2,000명의 경쟁자를 뒤로하고 3차 면접까지 간 적이 있었지만, 최종 합격한 이는 내정자라고 들었던 사람이었다. 재영 씨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좋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자 자신의 길에 회의를 느끼고는 했다.
동생 재윤 씨는 대학 졸업 후 이천의 한 도예가 작업실에서 문하생으로 일했다. 문하생의 급여는 최저임금보다 낮았고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서 했다. 개똥을 치우고 빨래도 하고 마치 가정부처럼 일했다. 도예가들은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자신의 작품을 깨버리고는 하는데 재윤 씨가 있었던 곳의 작가는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 도자기들을 부수곤 해 재윤 씨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더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작가 남자친구의 뒤치다꺼리를 재윤 씨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작가의 문하생 생활은 쉽지 않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작가 밑에서 일해도 도예가로서 성공하기 힘든 사실이죠. 지금 제 대학 동기 중에 도예를 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네요.”
그래도 재윤 씨는 현재 작가를 원망하진 않는다. 그 작가 밑에서는 몇 달을 못 버티고 나가는 문하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재윤 씨는 1년 반을 버텼다. 그 시간 동안 작가의 비법을 흡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작가의 실무를 지켜보면서 배우는 게 너무 좋았고 그렇게 익힌 게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재윤 씨는 1년 반의 문하생 생활을 관두고 부모님이 계신 속초로 와서는 약간의 방황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고생과 방황을 넘어 상승곡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윤 씨는 속초에서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다가 가게에 손님으로 온 남편을 만났고 요즘에는 빠른 편이라 할 수 있는 20대 중반에 결혼했다.
현실로 다가온 자매의 꿈
언니 재영 씨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가끔 속초로 올 때면 동생 부부의 삶이 부럽게 느껴졌다. 동생 재윤 씨가 남편이랑 보여주는 알콩달콩함도, 쏟아지는 별빛을 맞으며 설악산에서 하는 캠핑도, 동해안 푸른 바다의 멋진 풍광을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것도, 도시 생활에 지친 재영 씨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충분했다. 그럴 즈음 어머니 가게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자매는 막연하게 얘기하던 꿈을 떠올렸다. 자매는 언젠가 함께 작업실을 운영하자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먼 훗날의 이야기처럼 되뇌던 것이었다. 자매가 함께 그리던 미래는 좀 더 빨리 현실로 다가왔다. 자매는 공방을 통해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보자”고 합심했다.
5년 전 속초 교동 모친의 가게 자리에 자매가 연 공방에서는 식기나 항아리 같은 큰 작품보다는 클레이 냉장고 자석 같은 작은 물품들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다. 이는 공방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었고 또한 관광지라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냉장고 자석 같은 작은 물품들은 기념품으로 판매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초 교동에서는 가게가 잘되지 않았고 부채 해결을 위해 가게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매는 새로운 가게 자리를 알아봤다.
봉포 해변 현재의 가게 자리를 처음 봤을 때 재윤 씨는 가게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한번 들어가 보자는 어머니의 말에 마지못해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잠겨 있던 가게의 유리문 너머로 시야에 들어온 바다 풍경이 순식간에 재윤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재윤 씨는 2층에서부터 눈물을 왈칵 쏟았고 3층에 가서 가게를 둘러 본 후 반드시 계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매는 2층과 3층, 옥상을 모두 임차해 2층은 공방으로, 3층은 카페로, 옥상은 전망시설로 꾸몄다. 인테리어는 대부분 가족의 힘으로 해결했고 작년 초 문을 열었다.
현실 벽 넘은 자매의 특별한 미소
도자기별의 최대 장점은 전망과 분위기, 그리고 공 씨 자매가 직접 만든 작은 도자기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자기별에서는 창문이 프레임이 되고 자연이 그린 멋진 작품 네 장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가게 한쪽 편 아기자기한 도자기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등대, 어선, 테트라포드, 갈매기, 오징어 등 우리 지역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작은 도자기로 재탄생해 소유욕을 부른다. 고성군의 창업지원 덕분에 자매가 만드는 품목은 속초에서보다 좀 더 늘어났다. 자매는 앞으로 지역 특성을 반영한 제품들을 더 많이 늘려갈 생각이다.
카페는 수요일, 목요일에 쉬지만, 카페를 쉰다고 해서 자매가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페가 쉬는 날은 자매의 본업인 도예 작업을 하는 날이다. 해야 할 일이 많아 1주일이 짧지만, 자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다.
“좋아하는 일을 밤새워서 하면 기분이 좋지요.”
언니 재영 씨의 말이다.
도자기별과 도예에 관해 설명하는 자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들이 겪었던 현실의 벽을 떠올리면 재영, 재윤 씨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표정이 더욱 특별해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자기별이라는 지역의 특색 있는 가게가 앞으로 내실을 더해가길 응원하게 된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도자기별 공재영(오른쪽)·재윤 자매.
도자기별.
언니 재영 씨와 동생 재윤 씨가 함께 만든 도자기 제품들.
도자기별 계단 창문 너머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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