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음 씀씀이가 정말 착하고 고마울 따름이죠.”
양양에서 일하고 있는 한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희생적인 구조 활동이 큰 감동을 전하고 있는 가운데 그를 돕기 위한 각계의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 감동의 주인공은 지난 2017년 카자흐스탄에서 돈을 벌기 위해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알리(28) 씨.
양양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지난 3월 23일 밤 11시 22분경, 자신이 살고 있는 원룸으로 들어오다 매캐한 냄새가 나자, 직감적으로 불이 났다는 것을 알고는 2층으로 올라가 잠든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다소 서툰 한국말로 ‘불이야’를 연거푸 외친 뒤, 2층과 3층 사이의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입주자들의 대피를 도왔다.
이어 알리 씨는 최초로 불이 발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룸 203호를 두드렸지만, 신음 소리만 들릴 뿐 움직임이 없자, 1층 주인집으로 내려가 가져온 열쇠로 문을 열려고 했다. 이 세입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옆방 세입자와 함께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자, 알리 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건물 외벽의 가스관을 타고 올라 창문을 두드리며 대피하라고 연신 외쳐댔다. 하지만 이미 연기에 질식했던 203호 세입자가 대피에 어려움을 겪자 알리 씨는 옥상으로 올라가 203호와 연결된 TV유선 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열려진 창문으로 뛰어들어 문을 열고 구조 활동에 들어갔다.
그렇게 길지 않은 사투의 시간이 흘렀고,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불길은 잡히고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헌신적인 구조로 함께 거주하던 10여명은 목숨을 구했지만, 그렇게 살리려고 애썼던 203호 세입자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알리 씨도 목과 등, 귀, 손 등에 2∼3도의 화상을 입어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자신의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소리 없이 그 자리를 떠야만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목숨을 구하고도 정작 치료도 못 받는 그의 안타까운 사연은 화재 당시 그의 활약상과 딱한 사정 등을 소상하게 파악한 장선옥 손양초등학교 교감의 ‘강원도 의사상자상 추천’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알리 씨는 지난 2017년 부인과 아이들을 카자흐스탄에 남겨둔 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와 양양에서 막노동을 해왔다. 번 돈은 생활비만 남기고는 모두 고국에 보내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로 사용하게 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가는 곳마다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 대우받았다.
하지만, 알리 씨는 10여명의 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위험한 상황에서 한 자신의 의로운 행동이 오히려 자신을 고립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중증 화상을 입은 알리 씨는 치료는 고사하고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 추방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화재 현장에서 숨었고, 이를 안타까이 여겼던 주변 사람들이 속초보광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다. 더구나 그가 살던 다세대 주택은 대인배상에도 가입하지 않아 지원도 어렵고 화상치료비도 많이 들어 그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장선옥 손양초 교감, 알리 돕기 앞장
이에 알리 씨의 희생적인 선행을 접하고 의사상자 선정 등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장선옥 손양초교 교감은 손양초 교사들과 이웃, 지인들과 함께 십시일반 700만원을 모아 치료비에 보탰고, 그가 화상 치료를 받는 베스티안 서울병원에서도 치료비를 지원하는 등 각계각층에서 온정의 손길이 답지하고 있다.
알리 씨 돕기에 나서고 있는 장선옥 교감은 “아무리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지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기에 알리 씨의 헌신적인 구조 활동은 국경을 초월한 희생적인 것”이라며 “하루빨리 의사상자로 선정돼 안정적인 신분으로 한국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관계기관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에도 고귀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우리나라 국민을 구한 알리 씨의 딱한 사정이 전해지자, 속초경찰서는 양양군과 함께 알리 씨를 지원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속초경찰서는 지난 1일 1차 회의를 갖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특별승인의 건으로 화상치료비 지원을 요청했으며, 양양군은 희망나눔운동 지원사업을 통해 긴급 생계비와 치료비 지원에 나섰다.
또 양양군은 강원도를 거쳐 보건복지부에 알리 씨의 의사상자 선정을 건의했으며, 속초경찰서도 LG복지재단에 ‘의인상 추천서’를 보냈다. 속초경찰서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LG복지재단은 지난 22일 알리 씨에게 LG 의인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이 상을 받는 외국인은 2017년 수상한 스리랑카 국적 니말 씨에 이어 알리 씨가 두 번째다.
LG복지재단 관계자는 “불법체류 사실이 알려지고 다칠 수도 있는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로운 행동을 한 알리 씨 덕에 더 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의인상 수여 취지를 설명했다.
이와 함께 속초경찰서는 출입국사무소와 협의해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인 알리 씨가 정상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료비자(G-1) 발급을 준비 중이며, 2∼3개월가량의 충분한 치료를 받은 후 자진출국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이 같은 정상 과정을 거친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하고 싶다는 알리 씨가 취업비자 등으로 이전처럼 일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또 알리 씨에게 영주권을 줘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이번 사연이 올라와 정부와 관계기관이 어떤 조치에 나설지 주목되고 있다.
박재홍 속초경찰서장은 “알리 씨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세심하게 살피는 적극 행정을 통해 이들의 인권보호와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알리 돕기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2859400081>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의인으로 칭송받고 있는 알리 씨가 화상치료 약들을 보여주고 있다.
-------------------------------------------------------------------------------------------------------------------------------
“사람부터 먼저 살리고 봐야죠”
알리 씨, 고귀한 희생정신 큰 울림
지난 22일 양양에서 만난 알리 씨는 “당시에는 사람을 먼저 살리고 봐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다 구하지 못한 게 너무 슬프다”고 안타까워했다.
목 주위의 화상이 특히 심한 그는 지난 2주 동안은 서울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현재는 퇴원한 후 1주일에 한 번씩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인데,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치료도 잘 받고 있고 모든 것이 잘 정리된 후에도 다시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큰 눈망울에 한국어도 어느 정도 잘 하는 알리 씨는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도 고귀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지나친 개인주의로 치닫는 우리사회에 큰 울림을 전하고 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