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나 사는 이들에게는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말이 있다. 속초여고 출신 영어교사 박미란씨가 88서울올림픽에서 아프리카 가나선수단과 함께 서울을 찾아온 속초출신 사업가 김복남씨를 만난 이야기는 30년이 넘은 지금 봐도 흐뭇한 사연이 아닐 수 없다. 1991년 9월 23일자 <속초신문>에는 서울 장안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인 박미란씨의 독자투고에 해당 사연이 소개되었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88년 가을, 나는 88올림픽 자원봉사자로 아프리카의 낯선 나라 가나의 올림픽조직위원장 응깐사의 수행통역을 맡게 되었다. 위원장이 입국하는 날, 공항에서 온통 까만 얼굴들과의 첫 만남으로 긴장하고 있었는데 분명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그 수행원들 중에 눈에 띄었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 중년의 신사분이 가나의 아타쉐(연락관) 자격으로 온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가 내 고향 속초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라움과 반가움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그분의 이름은 김복남으로 속초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후 부산으로 내려가 원양어업을 시작해 이젠 지구 건너편 가나에서까지 수산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세계 속의 한국인’이었다. 그는 가나에서 인정받는 실업가이며, 가나 운동선수들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서울올림픽대회의 아타쉐로 뽑히게 되었다. 그에게는 ‘가나선수들의 대부’라는 호칭이 늘 따라 다녔다. 그는 대회 기간 내내 선수촌에 들러 선수들의 잠자리를 보살펴 주고 가나위원장과 함께 모든 경기에 빠짐없이 참석해 응원해주는가 하면, 경기가 끝난 날엔 선수들을 데리고 나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서울시내관광을 시켜주기도 했다. 방송국과 신문사에서는 그의 민간외교사절단 활약을 자랑스럽게 보도하기도 했다.
김복남씨는 아직도 고향을 잊지 않고 속초의 장학사업과 지역개발에 도움을 아끼지 않은 분이다. 너무도 바쁜 일정으로 동향인으로서의 기쁜 정감을 나눌 시간이 비록 충분치 못했을지라도 김복남씨는 올림픽과 더불어 내가 잊지 못할 또 한사람의 한국인, 속초인이다.
이 독자투고보다 한 달 가량 앞선 1991년 8월 19일 <속초신문>에는 우리 고장 인물로 “검은대륙 수산왕 김복남씨”를 소개하는 기사가 두 장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와 코리아의 합성어인 AFKO그룹 회장 김복남씨는 한국의 한 수산회사의 직원으로 아프리카에 첫발을 디딘 후, 회사가 석유파동으로 문을 닫게 되어 두 대의 선박을 처분하는 책임을 맡아 가나에 발이 묶였다. 김씨는 이를 계기로 가나에서 사업을 시작해 20여년 만에 가나에서 제일가는 수산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가나의 체육발전을 위해 훈련 및 해외경기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기도 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가나선수단 42명 전원의 왕복경비를 부담했다. 1985년에는 가나 스포츠기자협회가 주는 ‘스포츠 박애주의상’을 수상했고, 1988년에는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가나올림픽위원으로 위촉됐다. 김씨는 1982년 독립기념관 건립과 1987년 평화의 댐 건설 때도 고국에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김복남씨는 1980년부터 고향 속초의 중·고·대학생 44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 주고 있으며, 속초고등학교에 시청각 교육용 VTR 1대, TV 12대를 지원했다. 또한 13개동 노인회에 매년 월동용 연탄을 갖다주고 있으며, 1988년에는 각 동사무소와 파출소에 오토바이 26대를 업무용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이 기사가 나간 지 4년 만인 1995년 4월 17일 <설악신문>에는 안타까운 부고 소식이 실렸다. 4월 9일 속초시 장사동 출신인 AFKO수산(주) 김복남(63세) 회장이 미국 LA 한 병원에서 위암치료를 받아오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였다. 기사에서는 고 김복남 회장은 지난 1968년 아프리카 가나에 단신으로 건너가 굴지의 기업 AFKO수산(주)을 일으켜 세웠고, 5백만 평의 농장을 운영해 해외에 농산물을 수출해 가나경제에 일익을 담당해왔다고 했다. 88올림픽 때 가나선수단을 이끌고 내한해 한국과 가나 양국 외교의 가교 역할을 했으며, 가나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슬하에 자녀가 없어 유족으로는 부인 한영옥씨뿐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1주일 후인 4월 24일자 <설악신문>에는 지난 4월 17일 경기도 광주군 광주공원묘지에서 우리나라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가나 전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등 가나조문단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고 김복남 회장 장례식이 거행되었다는 소식이 실렸다.
1999년 11월 29일자 <설악신문>에 실린 기사 속에 고 김복남씨 이름이 나왔다. 영랑초등학교 1회(1944년 졸업)부터 8회(1950년 졸업) 졸업생들은 한국전쟁으로 학적부가 멸실돼 졸업인정을 못 받았다. 신문에서는 55년만인 12월 4일 총동창회가 졸업생 1백15명에게 학적 인증서를 수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졸업생 중에 영랑초교 3회 졸업생인 고 김복남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가나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의 호칭인 ‘파더(FATHER)’로 불린 고 김복남 회장. 사후에도 그의 행적은 ‘세계 속에 한국을 심은 선구자’로 수차례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었다. 생전에 직접 인터뷰를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설악신문>이 남긴 고 김복남씨 행적 기사는 자랑스런 속초인에 대한 기록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95년 4월 24일자 설악신문에 실린 고 김복남씨 사진.
1991년 8월 19일자 속초신문에 실린 고 김복남씨와 가나 국무총리 오벵씨. 김복남씨는 하바드 출신의 가나 국무총리 오벵씨와 아주 각별한 사이로 이미 공적인 사이를 뛰어넘어 인간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고 사진설명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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