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매스미디어 메인 뉴스는 21대 총선과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2대 뉴스의 뒤를 이어 매일 나오는 뉴스 중의 하나가 소위 ‘n번방’과 ‘박사방’이라는 낯선 이름이 자리를 차지했다. 필자의 나이 또래는 이름조차 낯선 텔레그램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미성년자의 성착취물을 유포하는 범죄 이야기가 매일 지상파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뉴스를 보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그 범죄 행위를 저지른 주동자와 그에 동조한 가입자들이 대부분 2030 세대이며, 청소년의 숫자도 매우 많다는 사실이었다.
오늘 뉴스에도 미성년자의 범죄 사실과 관련된 촉법소년(觸法小年)에 관한 논의가 재론되었다. 그 논쟁의 쟁점인 나이 낮추기가 하나의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사견이다. 그런 논쟁을 볼 때마다 불가의 능가경(楞伽經)에 나오는 견월망지(見月忘指)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본질인 달은 보지 못하고, 형식과 수단에 불과한 손가락만을 보고 있는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나쁜 짓을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그냥 “나쁜 놈들”이라고 매도할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든 우리 어른들에게 더 문제가 많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고 싶다.
예부터 인간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가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세 가지 학설이다.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인간의 성품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人爲)다 라고 주장한 순자의 ‘성악설(性惡說)’, 그리고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다만 교육하고 수양하기 나름이라는 고자의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과 괘를 같이하는 존 로크의 ‘백지설(白紙說)’로 이야기된다.
필자는 교육현장에서의 오랜 경험과 뇌 과학의 이론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타고난 성품을 백지에 비유한 ‘백지설’에 동의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작게는 그가 속한 가장 작은 사회집단인 가정의 양육환경이 만들어 낸 결과이며, 크게는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보여준 어른들의 모습인 것이다.
청소년 범죄와 미성년자의 범죄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우선이다. 필자는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려면 각각의 가정에서 시작되는 양육, 학교에서 진행되는 교육, 지역의 보육 환경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늘 펼쳐왔다. 이는 국가의 다양한 정책과 예산이 뒷받침 될 때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과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과 예산이 우리 지역에만 그런 특혜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우리 지역사회가 스스로 그런 인식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지역에서 최근에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활성화되는 몇 가지 사례들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게 우리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노래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컴컴한 노래방이 아니라 엑스포 분수대 광장에서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춤을 추고 싶은 아이들이 학교 체육관 현관에서 춤 연습을 할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악기를 배우고 싶은 아이들이 무료로 신나게 색소폰을 불고, 드럼을 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담배연기 가득 찬 PC방에서 게임을 할 게 아니라 거실에서 친구들과 정해진 시간만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어두운 공원에서 은밀히 데이트를 즐길게 아니라 청소년 전용카페에서 건전한 데이트를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일이 곧 앞길이 구만리인 우리 아이들이 범죄자라는 타이틀로 전 국민 앞에 얼굴을 공개하는 불행을 막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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