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폐류 집단폐사…악취에 주민들도 큰 고통
1991년 여름 청초호에 적조현상까지 발생
1991년 3,4월 두 차례에 걸쳐 낙동강에 독성물질 페놀이 무단 유출되어 수돗물까지 오염되는 사건이 발생되자 우리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동안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환경을 훼손해온 결과 식수원까지 오염되는 사태가 발생해 일반국민의 생명까지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속초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악신문>이 지역신문으로 첫 걸음을 내딛던 1990년대 초반 지역의 최대관심사가 청초호와 영랑호, 쌍천의 수질오염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청초호 오염이 당시 신문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다뤘던 가장 큰 이슈였다. 속초항과 청초호가 전국 최악의 오염 해역으로 손꼽히자 속초시민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다.
1990년 6월 11일 <속초신문> 2호에는 “청초호를 살리자”라는 제목의 심층취재 기사가 실렸다. 청초호가 얼마나 심하게 오염되었을까? 신문에서는 수질악화로 악취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유해 해충이 들끓고, 썩은 퇴적물로 해저생태계가 파괴되어 3,4년에 한 번씩 어폐류 집단폐사가 벌어지고 있어 적조 발생도 우려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수년 내 호수기능은 완전 상실하고 시민건강에도 큰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1988년 수질조사 결과 청초호는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3등급 해역 기준치보다 최대 4배가 넘는 곳도 있었고, 대장균은 기준치의 24배까지 검출되는 곳도 있었다.
이때 속초시에는 하수처리장이 없어서 시내의 생활하수가 모두 청초호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호수 주변 7개의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는 물론 선박 폐유까지도 호수로 흘러 들어왔다. 오염원은 대폭 늘어났음에도 속초항 방파제가 연장되면서 호수 물 순환은 더욱 어려워졌다.
청초호를 그냥 메워버리자는 주장도
당시 생활하수 유입을 막기 위해 하수처리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워 추진했으나 중앙부처에서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기약 없이 미뤄졌다. 청초호 수질 개선을 위해 갯배가 다니는 구수로 2만여평을 매립하고 청호동을 가로지르는 신수로를 건설할 계획도 세워졌다. 최정식 국회의원은 청초호 오염은 재생 불가능한 상태로 차라리 매립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이 주장에 반발했다. 해당 기사에서는 당시 지역개발연구회 윤중국씨의 말을 빌어 “청초호를 매립하여 천혜의 관광자원을 없애기보다는 정부의 과감한 투자로 정화사업을 펼쳐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 유치에 힘써야 한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는 “범시민 차원에서의 청초호 정화사업 참여와 청초호살리기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1년 뒤인 1991년 6월 3일자 <속초신문>에는 속초의 심각한 수질오염에 대해 기획기사가 실렸다. 이때 청초호인 속초항은 화학적산소요구량 COD는 전국 연안 중 최고 수준이었다. 영랑호도 3급수 수질기준을 초과했으며, 상수원인 쌍천은 설악산 1백70여개 상가와 숙박업소의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러들어 “물고기들이 수십 마리씩 죽어 떠오르고 퍼렇게 이끼가 낀 채 심한 악취마저 풍기고 있다”라고 했다.
청초호 수질오염으로 인한 주민 피해도 잇따랐다. 1991년 6월 24일자 <속초신문> 1면에는 “청호동 주민 살인악취에 시달려”라는 제목의 머리기사가 실렸다. 청초호 주변 청호동 주민들은 인근 사료·조미공장에서 버리는 온갖 폐수와 생선오물이 청초호로 배출되어 풍기는 악취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주민들은 날씨가 흐린 날이면 예외 없이 공장에서 한밤중에 몰래 오징어 분뇨 등을 마구 버려 아침에 나가보면 물가에 온갖 생선오물들이 가득하고 악취가 심해 구토가 날 지경이며, 특히 여름에는 악취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 지낼 수 없었다.
1991년 7월 15일자 <속초신문> 1면 머리기사에는 “청초호 오염퇴적물 상상초월”이라는 제목으로 강원대 환경연구소의 청초호 퇴적물 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청초호 중간지점에는 15m 이상의 퇴적물이 쌓여 표층에 산소가 거의 없고 많은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같은 신문 3면에는 속초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이 청초호 오염을 조사한 내용도 실렸다.
“쌍다리 밑에 떠다니는 고기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버리는 폐수, 찌꺼기들이 청초호로 흘러가 속초시를 오염시킨다. … 폐수와 찌꺼기 선박폐수가 청초호의 고기를 다 죽이고 있다. 고기를 꺼내 물에 넣을 때마다 기름이 묻어 있었다.…”
청초호 개발·수질 개선사업 추진
급기야 1991년 여름 청초호에 적조현상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1991년 8월 5일자 <속초신문>에서는 지난 7월 29일 청초호에 적조현상이 발생해 속초시장이 상경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등 속초시가 대책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와중에 1991년 9월 9일 청초호 개발사업이 첫발을 내딛었다. 그해 9월 23일자 <속초신문>에서는 동해지방해운항만청이 1997년까지 2백여억원을 들여 물양장과 호안, 방파제 등 어항시설을 축조하고 구수로를 매립한 뒤 신수로를 개설할 예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1992년 4월 27일 <속초신문>에서는 “환경! 우리가 지키자”라는 환경캠페인 기획연재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기사가 바로 속초항과 청초호의 오염이었다. 어민들은 속초항의 오염으로 정박한 선박이 나무가 썩고 쇠붙이 등이 일찍 삭아 수명이 10~20년 단축된다고 했다. 동명항 방파제 증축으로 해수로가 1984년에는 5백10m에서 1989년에는 1백70m로 좁아져 해수정체현상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도 청호동에 폐수처리시설을 갖춘 수산물 공동할복장이 1991년 중순에 착공해 1992년 5월 초순 개장을 앞두고 있었다.
1992년 7월 6일자 <속초신문>에 실린 중앙동 김정훈씨(28세)의 독자수필에는 청초호 오염을 접하는 속초시민의 참담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 갯배머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청초호를 넘나드는 갯배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청초호의 오염으로 인해 풍기는 악취에 코를 감싸 쥐고 재빨리 떠나버리기도 한다. 20년 전만 하여도 여름이면 동네 친구들과 함께 물장구치며 청초호 한가운데 침몰돼 있는 난파선에 올라가 해적놀이로 한여름의 더위를 죽이던 시절의 모습은 흑백사진 속의 모습일 뿐 맑고 푸르던 청초호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자신도 모르게 코를 감싸 쥐어야 할 만큼 오염되어 버렸다. …”
최악의 수질을 기록한 1990년대로부터 10년이 넘어서야 청초호의 수질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청초호로 유입되던 생활하수를 처리하는 하수종말처리장은 1994년 첫 삽을 떠서 장장 7년의 공사 끝에 2001년 7월이 되어서야 준공되었다. 그리고 청초호의 오염된 퇴적물을 제거하는 준설공사는 2000년 9월에 시작해 2004년 6월에 마쳐 청초호 수질이 3등급에서 2등급으로 개선되었다. 청초호 수질개선을 위해 추진된 신수로는 최종적으로 2012년 2월 1일 개통되었다. 당초 구수로를 메워버리려는 계획이 세워졌지만 중간에 철회되었다. 그 덕분에 속초의 명물인 갯배는 아직도 운행되고 있다.
많은 노력으로 청초호 수질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청초호 남쪽 호안 일대에서는 여름만 되면 심한 악취가 풍겨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91년 6월 24일자 <속초신문> 1면에 실린 청호동 입구 청초호변쪽 하수구 사진.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생선오물을 하수구로 몰래 버려 주변 주민들이 악취에 심하게 고통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1년 6월 3일자 <속초신문> 2면에 실린 만평 “속초항 오염, 전국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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