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문암천과 동해가 만나는 곳. 바닷가 앞인데도 문암천은 마치 냇물처럼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그 뒤로 큰 파도 소리가 몰려와 귀를 때린다. 모래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아기자기한 냇물 소리와 거센 파도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곳,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이런 묘하고 멋진 곳에 ‘헬로우씨’ 카페와 펜션이 자리하고 있다. 헬로우 씨(Hello Sea). 문암천이 바다를 만나며 “안녕, 바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4월의 평일 낮임에도 헬로우씨 카페 앞에는 20~30대 남녀가 여럿 보인다.
헬로우씨 카페와 스테이 헬로우씨를 운영하는 김종옥·전은지 부부는 2016년 늦가을에 문암진리에 정착했다. 이들은 그 이전엔 홍천에서 펜션을 운영했고 그 전엔 서울에서 내일의 성공을 향해 가던 젊은 부부였다. 김종옥 씨는 신촌에서 주얼리숍을 안정적으로 운영했고, 전은지 씨는 명문대 대학원을 다니며 국립국어원에서 일하던 연구직 공무원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이들이 서울을 떠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서울을 떠난다면 잃을 게 많은 사람들 같아 보였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이들을 변화시켰다. 전은지 씨는 어머니를 병으로 잃은 후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젊은 부부가 서울을 떠난 이유
전은지 씨의 어머니는 평생을 교직에서 일하다가 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 씨는 어머니가 퇴직자로서 여유로운 삶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자 큰 충격에 빠졌고 삶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당시 이들 부부의 일과는 이랬다. 공무원인 아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출근하고 나면 남편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가게로 가서 일하다가 밤 9시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 전 씨의 생각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어머니를 잃은 사람에게 이런 사실은 크게 다가왔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죠.”
전 씨는 이런 생각으로 직장과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에 김 씨는 아내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아내의 생각을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3개월의 시간을 줬고 결국 이들 부부는 함께 서울을 떠났다.
그들은 처음에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길 원했다. 양평에 부동산을 알아봤지만, 전원주택이 즐비한 양평의 부동산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고 서울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 홍천이다. 좌우로 길게 뻗은 홍천에서 이들 부부가 정착한 곳은 서울과 가까운 홍천의 서쪽 끝자락 산속이었다. 홍천에서는 객실 여섯 개를 가진 펜션을 운영했는데 부부 둘이서만 해나가기엔 일이 많은 편이었다.
부부는 산속에서 살아봤으니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정착지를 물색했다. 그들이 당시 고성을 둘러봤을 때 현재의 헬로우씨 펜션 인근 바다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부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부부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 근처는 넓은 공터였고 주변에 카페나 숙박시설은 없었다. 부부는 바다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이곳을 정착지로 삼았지만 다른 이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허허벌판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이 주를 이뤘다. 혹자는 여기서 카페나 펜션을 하면 망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부부는 객실 수를 홍천의 반으로 줄였고 카페도 문을 열었다. 부부가 이곳에 카페와 펜션을 열었을 때 부정적으로 말한 이들의 말대로 영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가게 문을 닫고 산책을 하고는 했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영업이 잘 안 되면 이러기가 쉽지 않지만, 가족을 잃고 서울을 떠나 온 이들 부부는 삶에 대한 관점이 달랐다. 그러자 주위에서는 병이 난 사람이 아픈 몸을 요양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오해했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남다른 시선
부부는 영업이 잘되지 않았어도 유력 매체에 광고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광고비로 나갈 돈을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쓰기로 했고 위생과 청결에 중점을 뒀다. 청소는 남에게 맡길 생각을 하지 않고 직접 챙겼다. 그리고 카페에서는 방문객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를 마련했다. 이는 ‘피크닉세트’로 바구니에 커피, 매트를 담아 작은 테이블과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건네받은 고객은 백사장으로 가서 차를 마시며 조촐한 소풍을 즐길 수 있다. 바다 바로 앞에 있는 헬로우씨 카페 안에서도 바다 풍경이 멋지게 펼쳐지지만, 피크닉세트로 고객은 바다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취재 당일은 평일 오전이었지만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 가게를 여러 사람이 찾았다. 고객과 대화를 나누는 부부의 모습은 고객과 가게 주인이 아니라 동네 이웃 간인 듯했다. 전은지 씨는 “단골손님이 저희를 먹여 살리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거대 매체를 통해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제 헬로우씨는 단골이 많다. 어떤 이는 1년에 열 번씩 찾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홍천에서부터 이들 부부의 펜션을 이용해오고 있다.
김종옥·전은지 부부는 작년 5월에 가게 마당에서 문암마켓을 열었는데 호평하는 이들이 많았다. 당시 행사에서는 최근 취임한 함명준 고성군수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 부부를 도왔다. 부부는 이 행사로 펜션은 운영하지 못했지만, 행사를 통해 주민, 방문객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두 번째 문암마켓은 여름 성수기라 참여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주도했지만, 부부는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축제 형식의 문암마켓을 꾸준히 열 계획이다. 이들은 상업성을 배제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이런 행사에서는 수공예품이 인기가 있지만 김 씨 부부는 미역, 황태 등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지역 특산품도 활발하게 거래되고 외지인과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을 바란다.
부부는 고성 정착을 원하는 이들을 도우려는 마음도 크다.
“저희가 아는 데까지 다 알려드리고 싶어요. 고성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앞으로 고성이 더 좋아질 거 같은데 젊은 사람들도 고성에 많이 정착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지역이 더 흥미롭고 즐거운 곳이 될 거라 생각해요.”
지역에 대한 애정과 세상에 대한 남다른 시선. 이러한 면 때문인지 조용하게 얘기하는 부부에게서 묘한 힘이 느껴진다. 아마도 헬로우씨 최대의 마케팅은 문암천 앞바다와 더불어 이들 부부의 사는 모습일 것이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고성군 문암진리 ‘헬로우씨’ 김종옥·전은지 부부.
헬로우씨 카페.
‘헬로우씨’의 특별한 서비스, ‘피크닉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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