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이 일어난 지 1년이 됐지만, 각종 복구율(본지 4월 6일자 1444호 15면 기사 참조)에서 드러나듯 산불 피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복구 문제에 더해 한전의 배상과 관련한 정부 구상권도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고 한전 배상을 둘러싼 지역민들 간 대립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산불 이후 지금까지 여러 비대위가 만들어지고 통합되는 등 비대위도 난립하는 양상을 보여, 이 또한 하나의 문제로 짚을 수 있다. 많은 피해민들이 단일 비대위로 힘을 합쳐 한전에 대응하길 원하지만 비대위 간 감정적으로 대립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화재 후 정부의 지원에 만족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떤 피해민들은 “다른 지역의 이재민들과 비교할 때 정부 지원이 더 좋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피해자들은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힘들어 보인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낸다. 이들은 지금도 여러 비대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 구상권 청구 원칙적 입장만 밝혀
비대위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1,300명 정도의 회원을 둔 ‘고성 한전발화 산불피해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고성비대위)이다. 고성비대위는 많은 회원 수를 기반으로 협상에 중심을 뒀고 작년 8월에 고성비대위 2명, 한전 2명, 강원도 1명, 고성군 1명 등 총 6명의 법률대리인으로 구성된 4자 간 논의 기구 ‘고성지역 특별심의위원회’(이하 특심위)를 발족시켰다. 특심위는 작년 12월에 고성지역 산불 피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한전의 최종 보상금 규모를 산불피해 손해사정 금액의 60%(임야, 분묘 등은 40%)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전은 올해 초 보상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활용 동의서를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 한전 측에 따르면 대상자 1,600여 명 중 1,100여 명이 접수를 마쳤다. 피해자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한전의 보상 계획에 응한 것이다.
한전은 지난달 25일부터 올해 초 동의서를 제출한 사람 중 임야·소상공인 피해자를 대상으로 보상금 지급을 위한 합의서를 받고 있다(소상공인은 지난 4일부터 접수). 현재 한전의 보상금 지급합의서 접수에서 주택 피해자가 빠진 것은 구상권 문제가 미해결 상태이기 때문이다. 주택 피해자는 임야·소상공인 피해자보다 정부 지원금을 상대적으로 더 수령했기에 정부의 한전에 대한 구상권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한전에 구상권을 청구할 경우 피해주민들이 한전으로부터 받을 배상금이 줄어들게 된다.
지금까지 고성비대위를 비롯한 여러 비대위가 정부가 한전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의 한전에 대한 구상권 청구는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행정안전부는 한전에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계획을 1월에 공식적으로 특심위에 밝힌 바 있고, 이달 초 산불 피해 지역인 토성면 용촌리를 1년 만에 방문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도 “구상권 문제는 법과 원칙대로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구상권 청구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상태이다.
“한전, 이재민 위한 자세 안 보여”
피해주민 중 일부는 고성비대위가 한전과의 협상과 정부의 구상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4.4산불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경혁, 이하 4.4비대위), 속초고성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장일기, 이하 속초고성비대위)는 한전의 배상 요율과 구상권 문제로 노장현 고성비대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심위 결정에 동의하지 못하는 비대위들은 소송에 적극적이다. 4.4비대위는 이미 두 차례 한전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1차-1월 21명, 2차-4월 44명), 3차로 소송인을 모집하고 있다. 고성속초산림비대위(위원장 장원섭, 이하 산림비대위)는 2월에 40여 명이 1차로 소송을 냈고 현재 추가로 소송인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소송은 적어도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소송 결과는 쉽게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산림비대위 관계자는 “막대한 피해를 고려할 때 이길 가능성이 적다고 소송을 포기할 수 없다”며 소송을 통한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4.4비대위와 산림비대위가 소송에 무게를 두는 반면, 속초고성비대위는 고성비대위처럼 한전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속초고성비대위 관계자는 “한전 본사와 속초지사에 협상을 요청하는 공문을 이미 작년 말에 발송했지만, 한전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주택 60%, 임야‧분묘 40% 배상 요율에 대해서는 고액 피해자들의 반발이 크다. 피해 금액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피해자들은 정부 지원, 성금 등으로 피해를 복구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피해 금액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들은 “한전이 제시한 60% 요율로는 피해복구가 어렵다”고 얘기한다.
또한, 피해자들은 한전의 대응 방식도 문제 삼는다. 4.4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한전은 모든 사람에 대해 일괄적인 기준으로 배상 처리를 하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됐다”며 “본인이 피해자라면 이런 방식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또한, 그는 “불은 피해주민들이 낸 것이 아니라 한전이 냈다. 그런 한전이 이재민을 위한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자신들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대단히 문제가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지난해 5월 8일 산불 피해 주민들이 한전 속초지사 앞에서 피해 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이 지난해 4월 24일 고성군 토성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이재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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