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신문> 창간 30주년을 맞아 ‘설악신문 30년, 다시 보는 그 시절’을 연재합니다. 그동안 <설악신문>에 실린 기사를 통해 당시 지역의 이슈와 사회상을 되돌아보고 설악권의 변화상을 짚어보는 기획 연재물입니다. 지난 30년 간 설악권은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번 연재기사를 통해 그 변화를 실감하시길 바랍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애독을 바랍니다.<편집자 주>
1990년 5월 <속초신문>이 첫 창간호를 내고 출범한 다음해인 1991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30년 만에 이뤄진 지방선거라지만, 양양 현남을 제외한 속초·고성·양양 수복지구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맞는 지방선거로 많은 주민들이 첫 지방선거에 큰 기대를 걸었다. 3월 26일 실시된 시·군의원선거는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었지만, 3개월 후인 6월 20일 실시된 도의원선거는 과열혼탁의 양상을 빚어 금품수수 혐의로 후보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빚기도 했다. 당시 <속초신문>에서는 이런 선거 참극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 은혜 보답하려 시의원 후보 사퇴 화제
1991년 3. 26 기초의원선거에는 속초·고성·양양에 총 27명의 시·군의원을 두고 81명의 후보자가 출마해 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속초 장사동 후보자 김성용(당시 35세)씨는 후보 등록 2일째인 3월 14일 오후 3시40분 선관위에 후보 자진사퇴서를 제출해 큰 화제가 되었다. 김성용씨는 1988년 당시 본인 소유 동광호가 포항 앞바다에서 사고가 나서 선원이었던 형이 사망하고 그 충격으로 부친마저 잃게 되었다. 김씨는 그때 자신과 동광호를 탔다가 사망한 선원가족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이 다른 후보자의 운동원으로 뛰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그래서 “그분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다”며 후보 등록 다음날 선관위에 사퇴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 선관위 직원 외에도 속초 11명, 양양 10명, 고성 6명으로 공명선거추진 민간단체협의회가 구성되어 활동했지만 워낙 후보자가 많아 제대로 단속과 계도를 할 수 없었다. 속초시 중앙동에서는 통장의 신분으로 특정후보자의 선거운동을 도와주어 물의를 빚었고, 금호동, 교동, 장사동에서는 후보자가 금지된 호별방문을 하기도 했다. 양양 서면에서 출마한 두 후보가 서로 상대후보의 불법을 고발하기도 했다. 한 후보는 다른 후보가 후보자 등록 이전에 5명의 주민을 만나 현금을 주었다고 고발했다. 고발당한 후보도 상대방 후보가 유권자 60여명을 모아놓고 음식을 제공하며 지지를 부탁했다고 고발했다. 후보 간 맞고발을 벌인 양양 서면에서는 단 17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속초 금호동에서는 안국준 후보가 1,603표, 김종수 후보가 1,597표를 얻어 단 6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처음 개표했을 때는 안 후보가 김 후보를 4표 차이로 앞섰으나 다시 검표를 한 결과 선관위 도장이 찍히지 않은 1표와 도장이 잘못 찍힌 2표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안 후보 표가 2표 더 늘어나서 6표 차이로 당선이 확정되었다. 고성군 토성면에서는 김완식 후보가 차점자와 단 10표 차이로 당선되어 화제가 되었다.
첫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속초시는 68.26%, 고성군은 77.2%, 양양군은 84.6%으로 전국 투표율 53.9%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양양군은 전국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 과열혼탁의 참극 빚은 첫 도의원선거
6월 20일 실시된 도의원선거에서는 속초, 고성, 양양 모두 7명의 도의원을 뽑는데 민주자유당, 신민당, 민주당, 무소속 후보 등 26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그중 속초 제2선거구에는 가장 많은 6명의 후보가 나섰다. 무엇보다 이 선거는 정당 공천까지 허용되어 대통령선거 전초전이라고 했다. 선거운동기간 중인 6월 10일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이 속초시민문화회관에서 당원 1천여 명이 모여 단합대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 김영삼 당대표와 최정식, 김문기 국회의원까지 출동해 세몰이에 나섰다.
선거는 초반부터 과열혼탁의 양상으로 치달았다. 당시 신문에서는 당원단합대회, 종친회, 동창회 등 각종 모임이 본격화되고 금품수수, 단체관광, 식사대접 등 매표성 향응제공 잡음이 난무하고 있음에도 속수무책이라고 보도했다. 선관위는 단속인원이 없어 감히 단속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증거물 확보가 안 돼 고발에만 의존했다. 속초의 합동유세장에는 1천여 명의 지지자들이 운집하기도 했는데, 선거유세가 절정으로 치닫자 주민들 사이에서 “식당마다 앉을 자리가 없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속초지역에서는 “모후보는 3억원을 쓸 것을 7억원을 풀었다”거나, “어느 후보는 매일 식당에서 손님을 받고 있다”, “모후보 선거운동원들이 거액을 받고 조직적으로 타 후보의 선거운동을 했다”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양양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후보자가 구속되는 일이 발생했다. 양양 제1선거구에 나선 무소속 A후보(40세)가 6월 12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해 4월 30일 저녁 9시30분께 양양읍 남문리 모식당에서 김아무개씨에게 현금 30만원을 주는 등 모두 12차례 3백10만원 상당의 금품과 음식물을 제공한 혐의였다. 6월 17일자 <속초신문> 7면에서는 “후보자·유권자의 멋진 공동작품”이라는 부제와 함께 후보자 구속 사실을 보도했다. 이후에는 구속된 A후보의 고발로 같은 선거구의 B후보도 불법선거운동 및 금품수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금품수수 혐의로 한 명은 구속, 다른 한 명은 불구속입건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결국 구속된 A후보가 59.1%, 불구속된 B후보가 40.9%를 얻어 A후보가 구속된 상태에서 당선되었다. 일부에서는 “구속이 오히려 A후보에게 도움이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고, A후보 측근들은 “옥중당선이지만 일단 명예회복은 됐다”며 한숨을 돌렸다.
선거가 끝나고 낙선한 B후보는 자신의 제보로 A후보가 구속된 게 아니라며, A후보의 구속서류와 함께 결백을 주장하는 서신을 집집마다 돌렸다. A후보도 당선인사 서신을 집집마다 돌렸다. A당선자는 다음해인 1992년 7월 28일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최종적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지방화시대라는 ‘큰 기대’을 받으며 시작된 1991년 지방선거는 이렇게 과열타락선거라는 오점을 남기며 ‘큰 실망’으로 끝났다. 기사 제목대로 ‘후보자와 유권자의 멋진 공동작품’이었다.
<엄경선 전문기자>
1991년 3월 15일 구 속초중학교에서 열린 속초시의원선거 속초교동선거구합동연설회 모습. 1991년 3월 25일자 <속초신문>에 실린 사진.
1991년 6월 17일자 <속초신문> 제 34호에 실린 불법선거운동과 후보자 구속 보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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