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마치 무슨 잘못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정신이 아뜩해졌다. 다시 계산을 해보았다. 결과는 분명히 42였다. 혹시 계산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런 기초뺄셈을 또다시 재검까지 해야만 했다. 아니다. 실제로는 여기에다 +1을 더해야 정확한 답이다. 그랬더니 43이 되었다. 자아인식 단계 “누가? 내가? 정말?”을 다시금 절감한다. 2020학년도 새내기 신입생 명단을 확인한 심정이다. 이것이 오차범위가 전혀 없는 물리적 세대차이의 실체다.
지난해까지는 신입생들이 밀레니엄 베이비 세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반이 넘는 신입생들이 20세기 2000년생 즈믄둥이였다. 그런데 올해는 정원 70명 가운데 가물에 콩 나듯이 몇 명만 빼고는 대부분이 21세기 2001년 이후 출생들이다. 남학생은 주민번호 뒷자리가 3으로, 여학생은 4로 시작한다. 귀로만 듣던 사실을 이제는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제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무려 43년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학도 코로나-19(COVID-19) 때문에 개강이 연기되었다. 교육부 권고에 따라 온라인 재택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입생들은 아직 얼굴도 못 봤다. 요즘은 강의콘텐츠 제작과 학생들 과제물 확인이 일과다. 소통에는 SNS가 필수라서 먼저 단체 SNS를 개설하고 학생들을 초청한다. 소통의 통제를 위해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일 기존의 단체 소통공간에 끼어 들어가면 젊은이들의 신조어, 은어와 준말에 자칫 휘둘리기 쉽다. 소통 벽을 절감해야 한다.
SNS의 신속한 소통에 준말은 필요악이다. ‘소확행’(소소하나 확실한 행복), ‘입덕’(열성팬), ‘1도’(하나도)는 그나마 익숙하다. 역세권을 비아냥거린 ‘슬세권’(슬리퍼 생활권), ‘갑통알’(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를 해야겠다)은 가난한 대학생의 비애이다. 접두사 ‘개’는 최상급 자리를 찬탈했다. ‘개좋아, 개싫어, 개쩔어’(아주 대단)가 대표다. 최하급과 최상급이 뒤바뀌었다. 그나마 ‘개떡’은 살아남았다. 언어 도치도 아니고 개판이다. 어원이 욕설인 민망한 비속어도 있다. ‘ㅈ나’가 그렇다. 대학생보다는 청소년이 심하다. 소통에는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젊은이들과 소통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75세를 ‘칠십 다섯’이라고 잘못 말한다. 바른 표현은 ‘칠십오’ 또는 ‘일흔 다섯’이다. ‘123’을 읽을 때 ‘일/이/삼’은 한자어, ‘하나/둘/셋’은 고유어 읽기다. ‘일둘삼’은 이상하다. 마치 군부대 암구호 같다.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써야 어울린다. 그리고 행사 때 단체인사를 “차렷 경례”대신 “차렷 인사”라고 하는데, 그냥 “인사”라고하면 몰라도 둘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 ‘경례’는 경의와 존경의 의미를 포함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지, “국기에 대한 인사”는 아니다. 군에서 “사단장님께 대하여 인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서로 간에 자연스런 인사가 제일 좋지만, 모든 것을 일제잔재라는 프레임에 가두면 안 된다. 영어 “Attention! Salute!”에서 Attention!은 ‘주목하시오’, 즉 ‘차렷’이다. 그러면 Salute!은 당연히 ‘경례’라고 해석해야 맞다.
어쨌거나 SNS 단체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신입생 연락처 저장부터 시작한다. 편리한 식별과 관리를 위해 이름 뒤에 ‘소프’라고 덧붙였다. 학과명을 약칭해서 ‘소프트’라고 해야 맞지만 이마저도 줄였다. 그러고 보니 요리전문가는 ‘쉐프’, 컴퓨터소프트웨어 전문가는 ‘소프’가 되었다. ‘부드러운’소통이다. 물론 필자가 만든 신조어다. 그리고 한꺼번에 ‘전송’을 눌렀다. “신입생 여러분! 입학을 축하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 때문에 학사 일정이 순연되었습니다. 건강에 유의하고 열공모드 기대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보냈다. 여기서 ‘열공모드’는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와 자세’를 의미하는 외래어 합성 신조어이다. 그러자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의 신호음들이 연달아 경쾌한 응답으로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카톡! 카톡!...카톡!”.
최철재
경동대 교수·이학박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