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강원연구원 강원학연구센터(센터장 장정룡)가 발간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실향민의 삶>은 속초 실향민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정리한 책이다.
엄경선(사진) 속초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이 집필한 이 책은 강원학연구센터가 ‘강원의 자연’에 이어 ‘이야기가 있는 강원인의 삶’이란 주제로 민통선, 탄광촌, 밭갈애비, 이민자와 함께 펴낸 아홉 번째 강원학지식총서이다.
“지금 시점에서 속초 실향민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짚어보는 일은 단순히 뼈아픈 분단과 갈등의 과거를 돌이켜 보는 과거 반추형 작업만은 아니다. 남북화해의 시대에 교류와 협력, 더 나아가 통일까지 갈망하는 미래지향의 작업으로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엄 위원이 <실향민의 삶> 머리말에 쓴 글이다. 실향민의 아픔은 남북 대립의 해소로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월남 실향민들은 왜 속초로 모여들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1951년 6월 수복된 속초에 남쪽으로 피난 간 원주민들과 월남 피난민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중략) 전쟁 중 속초를 비롯한 양양지역은 38이북 수복지역 중에서는 유일하게 민간인의 거주가 합법적으로 허용된 곳이었다.”<‘실향민의 삶’ 16쪽>
엄 위원은 “고향과 가까워 북진하는 군인들을 따라 왔다”는 보통 실향민들의 대답만으로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엄 위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실향민 도시 속초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한국전쟁 기밀해제문서 중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속초에서 활동했던 미군 군수부대(미군 제2군수사령부 예하부대 8206부대)의 활동 보고문서를 토대로 속초는 전쟁 중 ‘군수지원 거점지역’이었다는 것에서 실향민들이 속초에 정착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를 찾았다.
“속초가 군수지원 거점지역이 되면서 일자리도 많고 어업을 하면서 살만한 곳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월남민 중에서도 군에 몸을 담고 있거나 먼저 속초에 들어와 군속이나 군후생사업을 하던 실향민들이 가족과 친지, 동향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실향민의 삶’ 22쪽>
모두 15장으로 구성된 책에는 실향민 정착 초창기 속초의 풍경과 초창기 속초고 졸업앨범을 통해 본 실향민 학생들, 실향민들의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 정치의식, 음식문화, 함경도의 대표적 민속놀이와 민요인 북청사자놀음과 돈돌라리, 실향민의 삶이 투영된 문학과 사진·그림·노래 등이 소개돼 있다. 여기에 실향민공동체인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갯배, 수복기념탑과 실향민 상징 조형물, 실향민 단체와 망향동산·망향비 현황도 담았다. 그야말로 속초 실향민의 역사와 생활, 문화를 한권으로 읽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그렇기에 속초 실향민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대중서이다.
2장 ‘실향민 정착 초창기의 속초’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1953년 4월 21일과 22일 양일 밤, 북한의 미그기가 모두 4차례에 걸쳐 속초 일대를 폭격해 15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단신으로 월남한 5명의 단천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같은 고향 사람들이 나서서 시신을 수습하고 영랑호변에 안장하고 장례를 치렀다. 그것을 계기로 속초의 실향민 단체 중 가장 먼저 단천군민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피치 못해 고향을 떠나 온 실향민들의 비극적 최후가, 살아남은 또 다른 그들을 뭉치게 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한다.
엄경선 위원은 “과거 속초는 분단과 냉전에 상처받은 폐쇄적인 분단문화의 공간이었다면,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식의 변화에 따라 지금 속초는 실향민문화와 관광문화가 접목된 개방적인 통일문화공간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남북 융합적인 속초의 실향민 문화는 향후 남북의 문화적 공감 형성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재환 기자 semin2748@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