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커피 향을 그림으로 그리다보면, 문득 현재에 서 있는 나를 돌아보게 돼요.”
양양 현남면 북분리 작은 마을 귀퉁이에 아늑하게 자리한 ‘풀 하우스’는 주인장 전성호 작가의 작업공간이자 사랑방이다. 지난해 양양군청 대외정책과장을 끝으로 조금은 이른 시기에 20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접은 그는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다원화된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새로운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제가 이 길을 나서게 된 이유는 한 세대를 살아가는 개체로서 나름 다음 세대에 의미 있는 일을 남겨 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평소 누구보다 혁신적인 마인드를 갖고 모범적으로 공직을 수행하며 양양군청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던 그가 공직을 떠나겠다고 했을 당시만 해도 주위에서는 적극적으로 만류했었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아꼈고 앞을 보면 그동안 고생한 세월이 아깝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전 작가는 지금이 아니면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하지 못할 것 같았고, 자신이 선택한 이 길도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과감하게 안정적인 울타리를 나오게 됐다.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하고 나니, 가장 반기는 사람들은 역시 가족이었다. 같은 공무원인 부인과 자녀들도 그의 결정을 존중하며 새로운 시작과 도전에 가슴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이처럼 어렵게 다시 출발선에 선 전 작가는 자연스런 목표를 세웠다. 작은 북분리 마을을 글로벌 마을로 가꿔나가는 데 현재 남은 자신의 역량과 혼을 담기로 한 것.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랑방이 필요하다고 판단, 그림을 그리고 커피도 내리며 시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벽난로와 작은 우체통도 있고, 지하에는 와이너리 창고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세상과 소통하며 북분리 마을의 글로벌화를 위한 연결자 역할을 하는 게 마지막 목표다. 고향에서 현남면장을 지내며 서핑 활성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지만, 순수 민간차원에서 의식전환을 위해 가교역할을 해내고 싶다는 게 전 작가의 소망이다.
양양문인협회 창립 멤버이기도 한 그가 이렇게 소통 놀이터를 만들자,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뜻밖에도 유명인사도 아닌, 시골동네 아이들이다. 문만 열면 논과 밭, 산이 보이는 마을에 그림도 그릴 수 있고, 과자도 먹으면서 뛰어놀 수 있는 사랑방이 아이들에게는 그저 최고의 놀이터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은 소중한 친구들이 생겨 하루가 늘 행복하다는 그는 내국인은 물론 해외여행자들과도 교감하며 작은 북분리 마을을 누구나 공유하고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로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누구나 공유하는 커뮤니티센터로
조금은 일찍 나온 공직생활 경험도 그에게는 귀한 노하우가 되고 있다. 외지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서핑이나 공유숙박시설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추진할 때, 그와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해결책을 찾곤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처럼, 작은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며 협력했을 때 북분리와 양양군도 글로벌화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그 중간에서 자연스럽게 창조에너지를 덧입히는 연결자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고요.”
전 작가는 요즘 자신의 ‘글로벌 동네 만들기’를 위한 로드 맵 구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우선 지역명소를 널리 알리기 위해 양양바다와 해안, 남대천, 한계목 등을 그림에 담아내는 동시에 각종 환경문제도 인식전환을 통해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도록 웹툰으로 제작하는 계획도 세워 나가고 있다.
특히, 작은 마을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판단,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에서 사귄 친구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그들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태국 도이창을 여행하며 과거 마약재배단지에서 유명한 커피단지로 탈바꿈하게 된 요인들을 꼼꼼하게 기록해 북분리 마을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우리 지역과 양양군은 물론 우리나라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하루하루가 충만하고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요.”
책 내고 힐링 숲도 만들 계획
양양 현남면 북분리가 고향인 그는 군 생활 중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의 병을 앓았다. 원주국군통합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병상에 누워 마지막 잎새처럼 은행나무 한 잎이 외롭게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매일 새로운 풀처럼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이 만든 사랑방도 ‘풀 하우스’로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얻은 전 작가는 공직에 들어오기 전에 막노동은 물론 수도검침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적 사고가 몸에 배었고, 그런 가치는 공직에 들어와서도 한결같아 주민들로부터 친절한 공무원으로 칭송이 자자했다.
2007년 현남면사무소 총무담당으로 근무할 때는 해변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보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며 혁신적인 수거계획을 세우고 발품을 팔아가면서 가가호호를 방문, 주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후 관광과와 현남면장, 대외정책과장 등 주요 부서를 거치며 관광양양의 가치를 높이는 굵직한 사업들을 추진해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다.
“선진 관광대국들의 주요 명소를 살펴보면 지역주민들 스스로 지역 브랜드 가치 높이기에 매진한 과정이 반드시 있었어요. 주민들이 자신감을 갖고 지역적 가치를 높이는 데 나설 수 있도록 다시 디딤돌 역할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선생님 노릇도 하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그는 어김없이 북분리 해변으로 산책을 나간다.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해변산책은 그에게는 휴식이자 새로운 사고를 하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올해는 그동안 자신이 경험하고 걸어온 길과 앞으로 준비할 일들을 정리해 그림이 있는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특히,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자연의 휴식과 안식을 줄 수 있도록 자신의 산과 밭을 친환경적으로 활용한 힐링 숲도 하나씩 가꿔나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전시회도 갖는 게 작은 소망이다.
새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북분리 해안을 떠올리며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후 설악산에 오른 어머니의 사진을 캔버스에 옮기는 그의 열정이 설악권을 글로벌 도시로 덧입히고 있다. 김주현 기자
태국 도이창을 여행했을 때의 커피 향을 잊지 못해 그림엽서로 그렸다.
지역명소를 그림에 담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전성호 작가가 직접 만든 작은 우체통. 매일 친구들에게 보낼 편지를 써 넣은 후 우체국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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