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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사라질 위기 놓인 ‘거진 10리 1반’ 무슨 사연이…
소유주, 토지 인도 소송…21가구 소송 패해 쫓겨날 처지/‘텃도지’ 받아간 관리인 사망해 땅 임차 증명할 길 없어/ 협상 안 되면 12월까지 토지 인도키로 이행각서 서명
등록날짜 [ 2020년03월09일 10시10분 ]

고성에는 마을 전체가 철거를 앞둔 동네가 있다. 거진읍 거진10리 1반이다. 지난달 24일 마을 주민들은 법원 집행관을 만나 철거 집행을 위한 이행각서에 서명했다. 각서에는 토지 인도 협상 시한을 8월 말까지로 정했으며,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12월까지 주민들이 자진해 토지를 인도한다고 돼 있다.
거진10리 1반 21가구 주민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거진10리 1반 주민들은 이전만 해도 관리인에게 텃도지를 내고 별 문제없이 수십 년을 거주해왔다. 하지만 2013년에 관리인이 숨진 후 얼마 되지 않아 토지 소유주가 주민들이 살고 있는 토지를 인도하라는 소송을 냈다. 주민들은 1년에 한 번씩 관리인에게 텃도지를 내왔다고 주장했지만, 관리인이 사망한 상황이라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고 재판에서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19일부터 비어 있는 집부터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날 굴착기 등 철거 장비들이 동원돼 마을에 긴장감이 가득했지만 주민들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집행관은 주민들이 2월 24일에 이행각서를 작성한다는 조건을 붙여 현장에서 철수했다. 집행관은 지난달 24일 마을을 찾아 이행각서를 제시했고 이 각서에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올해 말까지 주민들이 집을 비워주기로 돼 있다.

“1년에 한 번씩 텃도지 내”
‘텃도지’는 거주나 농사 목적 등으로 사용하는 터를 빌린 값을 내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주로 곡식으로 내곤 했다. 거진10리의 주민들도 수십 년 동안 관리인에게 1년에 한 번씩 텃도지를 내면서 살아왔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쌀로 텃도지를 내왔다고 한다. 이후에는 쌀값에 준하는 돈으로 텃도지를 냈다. 토지 소유주가 소송을 내기 직전에는 방 한 칸에 2만원의 텃도지를 냈다. 이렇게 텃도지를 내는 것은 거진10리 1반 주민들만이 아니라 이 일대 사람들의 생활방식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1반 이외 주변 이웃 주민들 역시 1반 주민들처럼 1년에 한 번씩 땅주인에게 텃도지를 내고 있다.
거진10리 1반이 거진리의 다른 인근 주민들과 차이가 있다면 땅주인이 부재지주로 주민들이 땅주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과 관리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이전 땅주인이 수십 년 전 서울 사람에게 땅을 팔았고 이후 1반 주민들은 관리인에게 수십 년 동안 동짓달 무렵에 텃도지를 내며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 왔다. 가구에 따라 텃도지가 밀리는 경우 관리인이 집마다 직접 찾아다니며 텃도지를 받아 갔기에 텃도지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땅주인이 지역 주민, 혹은 지역 출신이라 주민들이 땅주인을 아는 경우 땅주인이 주민들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기도 해 땅주인이 임차인들의 사정을 배려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반 최석만 반장에 따르면 1반에서 불과 몇 십 미터 앞에 사는 어떤 집은 땅주인과 얘기가 잘 돼 자투리땅을 텃도지 없이 텃밭으로 일구고 있다.
1반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동네는 거진 출신인 땅주인에게 주민들이 직접 텃도지를 내오고 있다. 이곳은 이전에는 땅주인이 주민들에게 텃도지를 직접 받으러 다녔다고 한다. 이 땅주인은 이후 서울로 올라갔는데 그때부터 이 동네 주민들은 땅주인의 은행계좌로 직접 송금을 하는 방식으로 텃도지를 내고 있다. 이와 달리 1반 주민들은 관리인에게 텃도지를 내면서 영수증 같은 확인서를 받진 못했다. 이 점이 주민들이 땅을 빌렸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주민들이 전해 듣기로 관리인이 사망한 후 텃도지를 수령한 장부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볼 때 혹자는 주민들이 요즘 시대에 관련법을 모른 채 관리인을 무턱대고 신뢰하고 관습에 따른 게 잘못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입을 모아 “텃도지는 오래도록 영수증 없이 내오던 것이었고 그렇게 해도 거의 평생 문제가 없었기에 이전에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한다.

“60년 가까이 살아온 곳인데…”
10반 주민들은 대다수가 70대 이상의 고령이고 대개 수십 년씩 이 마을에 산 사람들이다. 82세의 한 할머니는 24세에 이 마을에 와서 60년 가까이 살았고, 80대 중반인 한 할아버지는 70년대 초에 이사 와서 어느덧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왔다.
10반 주민들의 기억 속에 이 마을은 과거에 매우 척박한 곳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얘기에 따르면 수십 년 전 이 마을에 몇몇 집이 있었는데 죄다 흙벽돌로 지은 작은 오막살이이었다. 마을에는 가시덤불이 넓은 면적을 차지했고 땅은 장화를 신지 않으면 다니지 못할 정도의 진흙이었다. 묘지도 군데군데 있어서 밤이면 겁이 나서 나오기 힘들 정도로 으스스한 동네였다.
이런 동네가 주민들이 가꾸면서 점차 변했다. 가파른 언덕에 좁은 길만 나 있는 곳에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직접 시멘트 길을 닦았고 볼품없는 오막살이는 개량해 나갔다. 집의 규모를 조금씩 늘려갈 때면 관리인의 허락을 받았고 집을 늘린 이후에는 그만큼 더 텃도지를 올려서 냈다.
10반은 산 위에 있었지만 바닷가에 가깝기에 예전 10반 주민들은 대부분 명태 할복을 했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주민들의 표현에 따르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었다. 대부분 가난했기에 아이들도 어른들의 일손을 도왔다. 엄마가 명태를 손질하면 창난 추리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손질해 말린 명태는 주인이 가져가고 주민들은 창난을 팔아서 살림에 보탰다.
가난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자식 교육에 신경 쓸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이 마을 어르신들은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 자식들의 도움을 바라기도 힘들다 말한다.
“공부라도 제대로 시켜서 내보냈으면 모르겠는데, 이제 와서 형편이 좋지 못한 자식들에게 어떻게…….”
요즘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주민들은 그럼에도 땅 소유주를 크게 원망하지는 않는다. 한 어르신은 “입장을 바꾸면 이해한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우리 스스로 해결을 못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한탄했다.
주민들은 땅 소유주가 가진 3,000평 중 주민들의 집이 차지하는 450평 정도의 면적만 개별적으로 주민들이 사게 해주길 바라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주민들의 집을 빼면 상당한 면적이 가파른 언덕이라 소유주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주민들의 바람은 한 가지이다. 그저 지금처럼 이 마을에서 계속 사는 것이다. 주민들은 임대료를 내고서라고 마을에서 계속 살길 원하고 있다. 주민들은 군에서 토지를 매입해 주민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기에 주민들은 이제 거의 희망의 끈을 놓은 듯 말한다.
누군가는 “바닷가에 천막 치고 살겠다”고 하고, 어떤 어르신은 “이제 땅속에 묻혀야겠다”며 한숨을 내쉰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철거를 앞둔 거진10리 1반.
거진10리 1반에 50년 가까이 살아온 함완호(85, 오른쪽)·이순자 부부(79). 함 할아버지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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