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거진해변을 지나다보면 명태어등이 한가득 붙어 있는 철망을 볼 수 있다. 이 명태어등들은 전문제작업체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만든 것이다. 거진10리와 거진11리의 주민들이 몇 해 전부터 명태어등을 만들고 있다.
거진10리 경로당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명태어등제작소’라고 적혀 있다. 2층에 올라가 문을 열자 10여명의 어르신들이 작업에 몰두 중이다.
명태어등제작소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80대이다. 여기서 일하시는 어르신 15명 중 가장 연장자는 90세 할머니이고 70대 중반이 이곳에서는 막내이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정성껏 제작
어르신들은 의자도 없이 바닥에 앉아서 일한다. 더군다나 바닥의 열선이 고장 난 지 오래돼서 어떤 곳은 차갑고 어떤 곳은 그저 미지근할 뿐이다. 더군다나 온풍기도 고장 난 상황이다. 그렇지만 어르신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3시간 동안 작업에 집중한다. 어르신들은 작업을 하면서 거의 쉬지 않는다. 좌식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 사람이라면 쉽게 엄두를 못 낼 작업이다. 사업 담당기관인 고성시니어클럽의 담당자가 어르신들에게 쉬면서 하시라고 간식을 건네며 얘기해도 어르신들은 묵묵히 일에 집중한다.
명태어등 작업은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먼저 나무에 못을 박아 만들어 놓은 틀에 철사를 맞춰서 구부려 납작한 명태 모양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철사 링을 만들어 연결하고 철사를 덧대 붙여서 입체적인 명태를 만든다. 이후 다른 작업자들이 종이를 잘라 붙여 기본 형태를 갖추고 그다음 색칠을 한다. 방수제 바르는 일도 빠트릴 수 없는 과정이다. 각각의 과정들은 분업으로 이뤄진다.
어르신들 대부분은 몇 년에 걸쳐 이 작업을 지속해왔다. 어르신들의 손놀림은 능숙하고 정성스럽다. 가위질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종이를 붙이고 계속 매만져서 모양새를 다진다. 하지만 수작업이기에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작업자 15명이 하루 작업 3시간 동안 완성할 수 있는 개수는 색칠을 빼고 5~6개 정도이다. 분업이라 이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혼자서 명태어등 하나를 만들려면 15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명태어등은 명태축제에서 1000마리를 사용하고 해맞이축제에서 200마리 정도 사용한다. 이렇게 해마다 수요가 많기에 작업은 다년간 계속해서 진행돼 오고 있다.
“작업 고되 인기 있는 분야 아냐”
어르신들은 대체로 말없이 작업에 열중하지만 가끔씩 농담도 오간다. 한 할머니가 “새 영감 하나 얻었으면 싶네. 한 씨랑 살아봐서 이제 한 씨는 싫고 다른 성씨면 좋겠네”라고 말한다. 여기에 다른 어르신들이 크게 웃으며 딱딱해 보이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부드러워진다.
어르신들은 작업을 하면서 세태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낸다.
“예전에 명태가 많이 날 때에는 거진 인구가 2만명 가까이 됐는데 이제는 거의 다 떠났네요. 예전에는 항구에 쌓인 명태를 그냥 가져가도 모를 정도로 많았는데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코로나19가 극성인 요즘 같은 때에는 옆에서 누군가가 기침을 몇 번 해도 어르신들이 긴장한다.
“기침하지 마래이.”
누군가 이렇게 얘기해 보지만 그러고도 여러 어르신들의 기침은 이따금씩 이어진다.
명태어등 제작은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진행된다. 어르신들이 고된 작업을 하고서 받는 노임은 작업의 어려움에 비해 초라해 보인다. 하루에 3시간씩 한 달에 10번 일하고 받는 돈이 27만원이다. 노인일자리 사업에서 진행되는 작업 치고는 고된 덕에 명태어등 제작은 그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명태어등을 제작하는 어르신들은 다년간 익숙해진 상태라 이 일을 계속해서 선택한다고 한다.
지역 축제에서 요긴하게 활용하는 명태어등이 좋지 않은 여건에서 진행되는 어르신들의 저임금 노동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숙제를 남긴다. 이는 사람들의 작은 관심도 큰 의미가 될 수 있는 숙제로 보인다.
이광호 기자 campin@hanmail.net
거진10리 명태어등제작소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
완성된 명태어등.
거진해변의 철망을 장식하고 있는 명태어등.
한 어르신이 틀에 맞춰 철사를 구부려 명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종이를 바르고 정성스럽게 매만지고 있는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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