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가 내리더니 저녁 무렵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 되나 싶더니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세계의 정치, 외교, 경제가 비틀대는 모습을 보니, 몇 년 전 흥미롭게 읽었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 균, 쇠>가 생각났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발전이 무기와 금속, 그리고 병균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저자의 통찰을 지구촌은 최근 몇 년간 메르스, 사스, 코로나를 통해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바이러스에 의한 충격파가 몇 년간 지속되어 왔던 내 삶의 패턴에도 영향을 끼쳤다. 동창회 모임이 취소되더니 이어서 계모임도 줄줄이 취소되고, 26년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았던 갈뫼 모임도 취소되었다. 그러더니 해마다 3월이면 여러 평생교육기관에서 시작되는 각종 강좌들이 줄줄이 개강을 연기했다. 지난 일주일 필자는 말 그대로 오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는 최고로 지루한 한 주를 보내야 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빈둥거리다 낮잠도 자고, 소파에 눌러 붙은 껌 딱지가 돼서 텔레비전 리모콘을 하루 종일 눌러대는 백수놀이도 하루 이틀….
사흘째부터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자의 관심 분야 중 하나인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들의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수의 평생교육 기관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필자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우리 지역에서 아동과 일반인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기관은 속초평생문화센터, 속초교육문화관, 속초교육도서관, 속초시립도서관과 작은 도서관, 속초문화원, 그리고 각 동 주민자치센터로 알고 있다. 필자가 각 기관의 공지사항을 검색하여 본 바에 의하면 속초평생문화센터 73 강좌, 속초교육문화관 41 강좌, 속초교육도서관 15 강좌, 속초시립도서관 9 강좌, 속초문화원 8 강좌, 각 동 주민자치센터가 5~10개 정도의 다양한 강좌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위 기관들의 프로그램 담당자들이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질적으로 우수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사적인 견해지만 프로그램의 운영상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어 의견을 개진 해본다.
위 평생교육프로그램의 운영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강좌 모집이 열린 마당이 아니라 닫힌 마당이라는 점이다. 필자의 상식으로 시민들에게 제공 되어지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은 강좌를 정해 놓고 그 강좌에 맞는 자격증을 가진 강사를 선발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를 공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 기관의 대부분은 강좌의 제목을 00 교실, 00 강좌로 못을 박아 놓고 그 프로그램에 맞는 강사를 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강좌 개설의 길이 전혀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관은 5년이 넘게 같은 강좌에 같은 강사의 강의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담당기관과 담당자의 고충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기관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기관의 시설적 측면, 강좌의 연계성 문제로 고정 운영되어야 할 강좌가 있어야 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몇 년째, 새로운 강좌 개설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 없이 관행적으로 똑같은 강좌들이 운영되는 현상은 피해야 한다. 적어도 각 기관의 특성상 고정적으로 연계 운영하는 강좌의 비율이 50%~7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게 필자의 사적 견해이다. 해마다 30% 정도는 강사 모집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공모하는 열린 마당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시민들의 지적 욕구나 수준은 점점 높아지는데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누구의 문제일까요?
한 번쯤은 짚고 가야 할 때가 되지 않나 싶네요!
지역의 평생교육 프로그램 강사모집 공고문을 읽으면서 그리스 신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저만의 기우일까요?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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