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으로 모은 생명 같은 재화를 남에게 아낌없이 기부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숨어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고개를 들면 하늘이 있고, 고개를 숙이면 땅이 있어 그 속에 존재하는 내가 있으니 행복하기에 하늘과 땅에 대한 감사함에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 때문인 것인가. 인생은 무상하고 너무 짧다. 그래서 남은 인생을 사랑하면서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늙고 인간답게 죽어야 한다는 것이 필연적인 이치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팍팍한 삶을 견디며 모질게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이기(利己)에 찌들어 남에게 고통을 주며 가슴 아리게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인간적인 기부가 존재하고 신뢰와 진실의 기반이 존재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죽을 때까지 추한 재욕을 끝까지 쫓는 사람이 많은 반면에 아름다운 빈손들도 수없이 많다. “이제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는가. 그저 남은 거 다 베풀고 가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 주면 된다.” 한국 영화계를 이끈 92세 신영균이 500억원 규모의 사유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에 써달라며 기부했었고, 모교인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그의 용기 있는 기부정신은 한국의 부자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크다.
앞을 볼 수 없고 혈액투석을 받으며 생명을 유지해온 장애인이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사용해 달라고 100만원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나름의 작은 소망이 있는가 하면, 40대 젊은 나이에 유서를 자신의 스마트폰에 적어 놓고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면서 생전 어렵게 모은 4억원의 재산을 기부한 의인이 있고, 월세방에서 살던 한 80대 독거노인이 기초생활수급 생계비를 모아 만든 전 재산 2,400만원을 기부한 아름다운 빈손이 있다. 85세 할머니가 평생 모은 전 재산 1억8천만원을 지인과 협의하여 좋은 일에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긴가 하면, 평생 일군 5천평의 땅과 재산을 전부 기부하고 기초생활 수급비마저 모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의인도 있다.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4명에게 새 삶을 안겨준 의사부친의 생명기부, 30년간 신문배달을 하면서 450명에게 장학금을 준 기부자의 마음에서 세상을 본다. 우루과이 호세무히카 대통령은 봉급의 90%을 노숙인과 실업자들에게 기부하고 농부로 돌아가 청렴하게 살고 있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강원도에도 시가 200억원 넘는 땅 2,062평을 기부한 김 모 교수가 있다. 까리따스마태오 요양원 기념비에 김 교수 가족 이름으로 기증한 사실이 있다. 어려운 시절 한 푼 한 푼 절약하여 일곱 사람 7개의 필지를 사들여 기부한 김 교수 부부의 결정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수십 년간 용촌마을에서 살면서 용촌~속초 간 버스비를 절약하기 위해 2시간을 걸어 다녔다. 지금도 택시 한번 타는 일 없이 검소한 생활을 이어간다. 노부부는 지금 용촌 땅에 없다. 지난 4월 4일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로 용촌 집이 한 순간 잿더미가 되어 평생교직에 몸담아오면서 지켜온 때 묻은 필구며 각종 서재, 연구자료, 저서, 원고 등등을 모두 화마가 삼켜 황망하고 비통하면서도 현실을 초연히 받아들인다. 세간에 알리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에 기부 사실이 단 한 번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자는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각박한 세상이기에 이를 거역하고 김 교수 부부의 기부정신을 본받고 기억하고 싶다.
지금 그곳은 유명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노인요양원 휴양지가 되었다. “우리 몸은 오래지 않아 허물어진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데 늙으면 모은 재물이 아무 소용 없다.” 83세 고령 김 교수의 말은 진정 인간다운 빈손을 말하는 것이다.
이대길
전 속초신협 이사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