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리 주변의 사회 현상들 중에서 세대 간 불균형이란 관점에서 각종 구조적 문제점들을 들추어낸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의 강연을 보게 되었다. 채널을 고정시킨 채 몰두하며 보게 된 이유는 그의 ‘스스로 파악해보는 꼰대 테스트’ 때문이었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세대가 한편으론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윗사람 말에는 우선 따르는 것이 생활의 지혜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나이나 학번을 물어봐야 안심이 된다. 회식에 개인적 약속으로 빠지는 건 좋지 않다’ 등 총 10항목에 이르는 자가 테스트 항목 중에서 나는 8개나 해당되었고 그의 진단은 단 한 개의 항목에만 포함되어도 ‘꼰대’라는 말이었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어느 새인가 결국 나도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기준으로는 ‘꼰대’란 자신만이 돋보이고 대접받거나 대우받기만을 좋아하는 사람, 나이가 벼슬이거나 지위가 권력인 사람, 권위를 내세우나 권위적일뿐 권위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필자가 생각하는 ‘꼰대’의 대척점에 있는 ‘어른’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성장이 완료된 사람이나 지식, 경험 등이 많은 이가 아니다.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빚어지는 갈등들을 조정하고 봉합하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 스스로를 낮추며 젊은이들과도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학창시절에, 우리는 학교 선생님들을 소위 ‘꼰대’라고 불렀다. 그 때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선생님을 그냥 통칭으로 그렇게들 부르곤 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고 어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그 꼰대라고 일컬어지던 어느 선생님의 격려와 지지로 자신의 인생 항로를 바꾸기도 했고, 그냥 묻어버리거나 묻혀버릴 수 있었던 자신의 능력을 발현시켜 나가 어느덧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돌아보면 그 때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어쩌면 ‘꼰대’와 ‘어른’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아주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됐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무려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이 일갈했던 문화 강국으로서의 자긍심이 우리를 휘몰아쳤던 날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 하고, 우리의 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 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만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타인에게도 행복을 전해주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말이 다시 한 번 되새김질 되는 날이었다.
굳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자면, 봉 감독이 같은 대학 동문이고 2년 후배였다는 점이다. 물론 학교 다닐 때는 그를 알지 못했고 그도 나를 알지 못했겠지만 어쩌면 같은 강의실에 앉아 강의를 들었거나 오가며 캠퍼스에서 몇 번은 스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처럼 숟가락을 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소식도 연이어 들려왔다. 문화계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계 종사자들의 창작의지와 활동을 제약하고 방해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그의 수상소식을 계기로 생가를 복원한다, 영화박물관을 건립한다는 등 4월 총선을 앞두고 숟가락 얹기에 여념이 없다는 소식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창작활동에 제약을 받던 그 시기가 몹시 힘들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작금의 행동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한다. 자신의 능력을 여러모로 십분 발휘했겠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소위 성공한 위치에 오른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금 ‘꼰대’와 ‘어른’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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