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여행과 같다고들 한다. 목적지를 정해두고 가는 길이니 귀가와도 같은데, 과정이 일정하지도 않거니와 반듯하게 정해지지도 않았으니 여행길과 같다고 한다.
장거리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나설 때면 긴 시간 많은 생각들을 하기 마련이다. 사는 모양에 따라, 살아가는 모양에 따라 생각의 모양은 제각각이겠지만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 하나 지니지 않은 이 없다. 이럴 때 불현 듯 따듯한 국물에 만 국수 한 그릇 간절하다.
가장 깊은 생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내용들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다. 대부분의 상처가 될 말이나 행동들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사소한 일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일들로 하여 관계가 망가지기까지 하니 반드시 삼가야 할 일이다.
어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 그들 나름의 질서가 있다. 배려심이 있는 아이들은 누구나 좋아하며, 이기적이거나 자신만을 내세우는 아이는 외톨이가 된다. 힘이 강한 아이라고 다들 무조건 그 아이의 뜻대로 따르지도 않는다. 힘이 있어도 친구를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설월(雪月)이 만정(滿庭)한데 바람아 부지마라/예리성(曳履聲) 아닌 줄은 번연(判然)히 알건마는/그립고 아쉬운 마음에 행여 긴가 하노라.
작자미상의 이 시조에서 만정은 만창(滿窓)으로도 쓴 경우를 보았는데, 개인적으로 만창보다는 만정이 더 지극하게 생각된다. 창 가득히 달빛이 들어오면 외로움이지만, 뜰 가득히 달빛 쏟아지면 진정으로 누군가와 정담을 나눌 자리를 준비할 술상을 차릴 흥이 나는 까닭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이렇게 조건 없이 나눌 수 있는 얼마간 조심스러운 마음이어야 한다. 예리성(曳履聲)이란 말은 ‘짚신 끄는 소리’란 뜻이다. 짚신 끄는 소리가 들리는 정취를 그려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듯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말과 행동은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임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부덕을 늘 타인의 탓으로 돌려 뒤에서 비방하기를 서슴지 않으니 안타깝다. 자신만을 중심으로 두고 하는 행동과 말이 곱게 보이고 들릴 까닭이 없다. 오는 말이 곱지 않음에 가는 말이 고와질리 없으며, 사람을 이용하려는 속을 알고 나면 경계심부터 품으리란 걸 깨닫지 않고야 어찌 아우름을 이루어 낼 수 있겠는가.
어떤 일이나 마찬가지로 극복하기 어렵다 여겨지는 일들이라도 시간이 흘러 얼마쯤 관조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 보면 아주 사소한 문제였을 뿐이란 걸 알 수 있다. 그 중심축엔 이기적인 행동과 말이 바탕이 되어 불신을 싹 틔우고, 공연히 휘말려들어 괴로워했다는 걸 이해하게 되면 참으로 부질없어 보인다. 이러한 모든 보푸라기 같은 삶의 과정들이 지닌 경위와 매듭을 푸는 방법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알게 된다. 구태여 서둘러 옹졸함을 드러내는 경거망동을 삼가야 세상살이 물 흐르듯 할 일이다. 늘 삼가고 경계하면 사소한 문제들은 이내 질서 속에 자리하게 된다.
국물 따듯한 국수 한 그릇 먹는다고 마음까지 따듯할 일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먼 길에서 잠시 정차하는 정류소에서 국수집을 기웃거린다.
2011년 6월 7일자 발행에 처음 글을 실으며 시작한 ‘사는 이야기’ 필진으로의 활동이 이번 47번째 글로 독자들과의 만남은 마무리한다. ‘사는 이야기’ 외에도 세 편의 시가 <설악신문>을 통해 소개되었으니 인연이 적다 할 수는 없다. 언제고 좋은 자리로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지는 게 삶이 아닌가. 그동안 함께 하였던 <설악신문>의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설악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그동안 좋은글 보내주신 정덕수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정덕수
시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