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온 19년 동안 2박 3일로 다녀온 수학여행이 가장 오랫동안 집을 비웠던 기간이다. 그런데 타지의 대학에 입학한 후 3개월 가까이 집에 내려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부모님과의 전화를 내가 먼저 하게 되었고, 통화 시간도 두 배가 되었다. 이때의 마음은 차마 그리움, 그리웠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내게 추석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할머니 댁에서 보고 싶었던 친척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화목한 분위기는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내게 엔도르핀을 더욱 많이 분비시켜준 것은 이모부의 용돈이었다. 다 합했더니 나의 한 달 생활비랑 맘먹었다. 덕분에 나는 축제분위기를 며칠 동안 더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오리백숙으로 축제의 정점을 찍었다. 입도 즐거웠고 피로도 싹 풀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고는 가장 높음을 뜻했다.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게 되었다. 나는 용돈을 모두 탕진해서, 뼈저리게 가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하루 3끼 식사를 모두 라면으로 해결했다. 더구나 라면은 평소 먹던 라면보다 맛없었다. 먹을 때 마다 머릿속에 담백한 오리고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 사상(空思想)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 교리를 말한다. 세상에 행복만 존재할 수는 없다. 행복은 불행과 관계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다(색즉시공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다시 말해 오리고기를 먹음으로써 행복을 느낌과 동시에 행복에 대한 기준은 높아졌고, 이에 따라 불행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고 그를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오리백숙을 선택한 것은 본성을 따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불행과 함께한다는 공 사상을 배움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이상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정말로 불행 없이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계단식발전’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계단식발전이란 능력을 키우면서 꾸준히 한걸음씩 올라가는 계단식의 인생 그래프를 뜻한다.
내가 불행했던 이유는 능력 밖의 짧은 행복이 행복을 느끼는 기준을 높여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돈이 뒷받침됐다면 계속해서 행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능력 밖의 행복을 조심하고, 꾸준히 올라가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이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계단식발전으로 행복한 나는 과거의 나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피한 과거를 신경 쓰지 않게 만들어진 사람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에서 계단식발전은 한계를 지닌다. 필자는 과거의 나에게 연민을 꾀나 느끼도록 교육받아서 아쉽다. 그래서 오늘도 필자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 자유롭지만 책임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대혁명을 꿈꾸며 산다.
최성환
대학생·속초고 61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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