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에서 경자년으로 또 한 해의 이름이 바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시기가 되면 마음이 늘 착잡하다. 늘어가는 나이의 숫자에 비해 삶에 대한 희망수치는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이맘때면 누구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올해 초 칼럼에서 기해년은 ‘황금돼지의 해’이기에 개인에게도, 지역에도, 국가에도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글을 썼다. 그러나 올 한 해 진짜 돼지들에게는 황금의 해가 아니라 죽음의 해가 되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집돼지는 살처분이라는 벼락을 맞아야 했고, 산에 사는 멧돼지도 폐사와 도살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숱한 개체들이 죽어가야만 하는 한 해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이 불러온 재앙을 우리는 애꿎은 돼지 탓으로 돌리며 그로 인한 손해만 계산할 뿐, 그 근본적 개선방안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돼지들의 비명 소리 속에 황금돼지의 해가 간다.
국민들은 살기 힘들다고 모두 아우성이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인건비가 감당되지 않는다고,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고, 열심히 벌었는데 세금 때문에 남는 게 없다고, 물가는 자꾸 오르는 데 내 월급, 연금은 제 자리라고… 어디를 가나 우는 소리요, 죽겠다는 서민들의 징징거림 속에 힘든 한해가 간다.
나라 또한 사면초가였다. 북한은 걸핏하면 미사일이라는 헛 주먹질로 뒤통수를 근질거리게 하고, 일본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툭하면 딴지를 걸어 우리의 발목을 잡으려 하고, 중국은 아직도 우리가 자기들의 변방 속국이라는 속내를 버리지 못하고 여차하면 정강이를 걷어차려고 하고, 미국은 이제껏 우리나라를 중국과 북한과 소련을 견제하는 철조망으로 활용하더니, 이제 와서는 돈 보따리 내 놓으라고 멱살을 흔들어 대는 한 해가 그렇게 간다.
그런데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주인공들은 정작 오늘도 딴 짓거리에 정신이 없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입에 발린 말을 침도 안 바르고 떠들어대면서 해결되어야 할 민생법안은 뒷전으로 미룬 채, 한 쪽은 로텐더 홀에서 담요를 깔고 들어 눕고, 다른 4+1은 자기편에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들려고 협상인지 협잡인지 분간 안 되는 일들이나 해대더니, 오늘은 필리버스터라는 쇼를 국민 앞에 요란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붕이 푸른 집에 몸담은 이들과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힘겨루기도 점입가경이다. 그래놓고 그들이 가져가는 세비가, 봉급이, 연금이 일하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국민들은 짜증이 난다. 그래서 우리 같은 서민들은 쥐꼬리 같은 세금조차 내기 싫은 거다. 그렇게 짜증 속에 기해년이 간다.
15일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공명지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을 비롯한 많은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다. 새의 머리 하나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깬다. 한쪽 머리가 항상 몸에 좋은 열매를 챙겨 먹자 다른 머리는 이에 질투심을 느낀 나머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고 결국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서로가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교수들이 선정한 ‘공명지조’는 진보와 보수가 극한 대립으로 서로를 이기려고 격렬하게 싸우는 현 정치 상황에 대해 화두를 던진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결국 한 몸인 것을 왜 모르느냐는 안타까움을 상징하는 말로 뽑힌 것으로 보인다. 올해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한 촌철살인의 사자성어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기해년의 뒤에 오는 새해가 경자년(庚子)이다. 이 또한 60년 만에 오는 ‘흰 쥐의 해’라고 하고, 흰 쥐는 풍요, 기회, 희망을 상징한다고 풀이 한다. 그러니 내년에는 나도, 우리 지역도, 나라도 각자의 희망대로 척척 풀리는 만사형통(萬事亨通)의 한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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