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올해도 예년처럼 이런 저런 모임의 송년회를 치르다 보면 순식간에 12월도 다 지나갈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각오를 다져보자고 하는 송년회가 본래의 의미는 상실한 채 그냥 약간의 의무감만으로 관행처럼 치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들어 더 진해진다.
올 한해도 우린 열심히 잘 살아온 걸까? 이 즈음에 이스라엘 출신의 심리학자이자 특이하게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의 <정점과 종점의 규칙>을 떠올려 본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경험을 두 가지 방식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보통 우리는 경험의 합으로 어떠한 일화를 기억하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뇌는 가장 기뻤거나 고통스러웠을 때의 기억과 가장 마지막의 기억, 두 가지 방식으로 어떤 일화를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지난 일들을 평가할 때 ‘가장 좋았던 일’과 ‘가장 마지막 일’이 그 경험 내용 전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후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정점과 종점을 제외한 일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랫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객지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을 속초에서 우연히 만나는 경우들이 생긴다. 반가운 마음에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추억을 나누다 보면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그는 크게 또한 또렷이 기억하는 경우들을 본다. 아마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경험했었을 그 일들이 그에게는 크게 와 닿았을 것이고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내가 왕년에는~”하면서 과거의 경험들을 이야기 하곤 한다. 그들에게 있어 그 때 그 시절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정점에 해당되는 부분일 것이다. 삶속에서 그들의 가장 빛나던 시절일 그 때 그 시절은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을, 그들의 지금까지의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마지막이라고 여겨지는 순간들도 아름답게 기억된다. 젊음의 한가운데 서 있었을 때, 새로 만든 동아리의 첫 MT 준비를 하던 날 비수처럼 날아든 입영통지서 한 장. 덕분에 한창 즐거웠어야할 첫 MT는 결국 눈물로 얼룩진 나의 입대 환송식으로 변해버렸고, 사회와 단절되던 그 마지막 장면은 입대 후 군복무기간 내내 나를 지탱하게 만든 가장 아름답게 기억되는 순간이 되었었다.
올 한 해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올 한해 우리의 정점인 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기뻤던 일들은 무엇이었으며 혹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혹 한해가 다 지나가도록 정점이 없었다고 느껴진다면 지금이라도 올 한 해 가장 아름답게 기억될 종점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워낙 유명한 이 문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이자 문학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자신이 쓴 자신의 묘비명이다. 대문호의 삶을 이렇게 겸허하면서도 위트 있게 표현한 문구라니….
문득 뒤돌아본다. 우물쭈물하다가 한해 한해가, 또 인생이 이렇게 저물어 가는 것은 아닐는지….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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