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익숙했다. 호적과 꽹과리가 공연장 입구에서 시작하여 무대 쪽으로 이동한다. 짓궂은 장난처럼 관객과 호흡하며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무대 위에서 한판 신명나는 놀이가 펼쳐질 때 하얀 배경막 위로 한 사내가 등장한 후 그림을 그린다. 액션 페인팅인가 싶었는데 조금씩 완성된 그림은 명태다. 거친 붓줄기가 그려놓은 명태는 이 작품이 만만치 않음을 알리는 마중물이었다.
지역성 바탕, 속초형 공연 보여와
속초시립풍물단의 열두 번째 정기연주회 ‘명태’가 지난 3일 오후 7시 30분 속초시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때려라 덩쿵’, ‘꿈꾸는 사자’, ‘청사초롱’, ‘만선’. 그동안 제작한 풍물단의 정기공연 제목이다. 시립풍물단은 박자와 리듬이 중시되는 타악 기반의 국악단이다. 누군가에는 익숙하고 단조로울 수 있다.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공연장의 열기만으로는 매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작품들이 지역성의 발견이다. 함경도 사자놀이와 실향민의 애환을 다른 작품으로 ‘꿈꾸는 사자’와 ‘청사초롱’을 제작했다. 속초사자놀이보존회와 영북민속문화연구회 갯마당, 신천무용단이 함께 하여 평창동계올림픽 ‘1시군 1문화’의 일환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타악에 그치지 않고 실향민 서사를 바탕으로 연극적 요소를 도입하는 등 타 장르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속초형 공연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만선’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수산업의 도시 속초의 상징을 만선으로 표현하며 특유의 리듬과 박자를 어부들의 생활용품으로 만들었다. ‘만선’은 또 다른 의미도 가지고 있다. 속초의 도시정체성 중 하나를 수산업의 역사로 바라보는 연구가 시작되었을 때 나타난 작품이라는 점이다. 도시연구와 대표작품의 연관성은 차별화된 지역콘텐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축제 대표 공연으로 다시 올려야
<명태>는 속초시립풍물단의 주제의식과 작품 노하우가 한층 빛을 발휘한 경우이다. 익숙한 것에서 탈피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되 본질은 잃지 않았다. 주제와 소재는 더욱 지역성을 갖췄다. 맨몸으로 모래위에 터전을 만들며 바다라는 공유공간에서 삶의 희망을 스스로 개척했던 실향민의 삶. 그 중심에 명태가 있다. 명태는 속초 수산업 번영의 상징이자 무분별한 노가리의 남획과 기후변화 때문에 사라진 대표 상품이다. 그 명태를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와 공연예술이 선보이면서 탄탄한 내러티브를 구축했다. 부정거리로 시작하는 동해안 별신굿과 악사의 공연은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았다. 인간과 명태의 처지가 바뀌는 명태도(島)에서의 에피소드는 코믹한 우화로 표현하여 공연감상자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시립풍물단원들의 노력과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낸 임오섭 연출가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풍물단원들은 악기 연주는 물론 가수 강산에의 ‘명태’와 가곡 ‘명태’를 부르고 탭댄스를 집단 군무로 선보였다. “우리 음악으로 새로운 작품을 그려내야 한다는 생각”(전성호 악장의 팸플릿 인사말 중)은 성공적이었다. 작품의 극과 연출을 맡은 임오섭 연출가는 주제의 선명함, 작품의 강약조절, 모든 세대가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내러티브를 구축했다. ‘청사초롱’과 상도문 인형극 ‘도문동 사람들’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연출력이 이번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휘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국악 연주자들이다보니 대사 발성 등 연기력에 한계가 있었다. 장면전환이 매끄럽지 못한 장면도 나왔다. 오랜 시간 노력했을 것 같은 탭댄스의 경우, 경쾌한 스텝이 객석에 전달될 정도의 음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명태>는 속초시립풍물단이 지역의 예술단체이자 예술가로서 어떻게 스스로를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다.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고, 국악이 어렵거나 단조롭다고 생각하는 관객에게 폭넓은 재미를 선사한다. 풍물단원이 직접 공연한 탭댄스나 가곡 <명태>를 객원출연자가 직접 한다면 더욱 수준 높은 공연이 될 수 있다. 실향민문화축제나 설악문화제 등 속초를 대표하는 축제의 대표 공연으로 다시 무대에 올릴 필요가 있다.
김인섭 전문기자
속초시립풍물단이 정기연주회 ‘명태’를 지난 3일 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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