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른 스케줄이 없는 아침, 컴퓨터를 켜고 뉴스 제목부터 쭉 훑어본다. 오늘도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협상과 협치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당리당략의 논리에 갇힌 삼류 정치가들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 관한 기사가 메인이다. 기사 제목을 더 읽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청탁, 수사, 파업, 해고, 극단적 선택 같은 부정적 단어 일색이다. 답답한 마음에 베란다에 나가 설악산을 올려다보니 밤새 내린 하얀 눈으로 산봉우리가 온통 은색이다. 침침했던 눈이 금방 시원해졌다.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은 트이는 것 같아 한참이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고 있었다. 설경 덕분에 조금은 맑아진 눈과 마음으로 다시 서재에 들어가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아직 정하지 못한 칼럼의 글감을 찾기 위해서다. 미리 정해 놓았던 주제 두 개가 아직 어떤 방향으로 전개 될지가 미지수라서 다음 글감으로 미루다 보니, 이번 칼럼의 글감이 발등의 불이 되었다. 그런데 몇 개의 기사를 읽다 보니 의외로 쉽게 글감이 정해졌다.
고구마 같은 이야기 하나
지난 4월,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가지고 난동을 부린 범인을 용감하게 막아선 경비원 정00씨의 그 뒷이야기이다. 불이 난 계단으로 올라가 범인을 막아서다 흉기에 얼굴에 상처를 입고도 끝까지 주민들을 대피시킨 뒤 마지막으로 응급차에 올랐던 정씨는 광대뼈 골절에 잇몸과 턱이 내려앉고 얼굴 신경 절반이 마비돼 두 달간 수술과 입원 등 치료를 받으며 산업재해 휴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이 준 돈은 하루치 급여 6만 6천원 뿐. 얼굴만 다쳤으니, 일하는 덴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언론 보도로 결국 휴업급여는 다 받았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근무가 힘들어 석 달간 무급휴가를 냈는데, 관리업체는 임시직인 정씨를 대체할 다른 직원을 채용해버렸다. 정씨는 결국 사직서를 내야했다. “근무자의 역할을,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직되는 일이 발생하면, 누가 내 몸을 던져가면서 이런 의로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아파트 관리소장의 뼈아픈 일침이다.
고구마 같은 이야기 둘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이돌 가수 00에 이어 000까지. 이들은 모두 악성 댓글과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버려야 했다. 일부 언론이나 포털의 경우, 기사 조회 수로 수익을 내는 구조에서 자극적인 제목으로 악성 댓글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사건을 계기로 포털사이트 다음이 연예 기사 댓글 난을 잠정 폐지하고 네이버도 감시시스템을 강화했지만, 악성 댓글은 줄지 않고 있다. “계속 댓글들이 악플로 번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죠. 언론이나 포털이 현재 뉴스 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는 이 문제가 해결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느 대중문화평론가의 지적이다.
사이다 같은 이야기 하나
“감사합니다. 기사님 덕분에 (에어팟 한 쪽을) 찾아서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번거로움을 감추시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음을 알기에 부담없이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사님 덕분에 웃으며 하루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분실물을 찾아준 버스 기사에게 간식과 손 편지를 건넨 학생의 사연이다. 국민일보의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꼭지에 실린 글을 읽으며 위 두 개의 글을 읽으며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어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이다 같은 이야기 보다 고구마 같은 이야기로 뉴스 판이 도배가 되는 사회가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슬픈 타이틀이 아니라 ‘오늘도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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