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어느 집에나 그들만의 음식 비법이 있었다. 특히 장이나 김치의 경우 지역마다 집안마다 들어가는 재료나 담그는 방법, 보관방법까지 저마다의 특별함으로 대대손손 그 비법을 이어오곤 했다. 장아찌도 그중 하나다.
고성군 토성면 금화정리에 위치한 ‘소리㈜ 장아찌여왕’의 대표 박성현(48)·도명숙(55) 부부의 장아찌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손맛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아내 도명숙씨는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데, 마을 향교를 지켜오는 종갓집에서 태어났다. 1년이면 몇 번씩 100명이 넘는 손님을 치러야 했고, 그때마다 만들어내는 음식의 가짓수는 셀 수 없었다. 그런데 제철에 나오는 음식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한정되다 보니, 장아찌같이 한번 담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할머니, 어머니의 손맛과 음식 비법을 물려받은 아내 덕에 박 대표는 지난해 대표음식명인 1호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태풍피해 입고 시작한 장아찌 사업
박 대표의 주종목은 장아찌다. 그가 처음 장아찌를 담그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다.
20년 전 야생화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산으로 들로 야생화를 채집하러 다니다 보니, 철마다 나는 나물이며 열매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철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쉬워 고민 끝에 생각한 것이 장아찌였다. 처음엔 친한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는 정도였는데, 나중엔 돈까지 주며 장아찌를 나눠달라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걸 사업으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뿐이던 일을 실행해 옮긴 결정적 이유는 태풍피해로 운영하던 야생화농장은 물론이고, 살고 있던 집까지 물에 잠겨 3년간 온갖 정성 들여 키운 야생화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태풍피해 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찾던 중 그냥 마음속에 막연한 꿈으로 자리하고 있던 장아찌를 떠올렸다고 한다.
음식의 맛은 재료가 반, 손맛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할머니 때부터 이어오던 손맛을 지닌 아내가 있었고, 본인은 야생화를 채집하며 익힌 기술이 있으니 이를 접목해 특별한 장아찌를 만들어보자 한 것이 지금에 이른 것이다.
항아리에 보관해 아삭함 살려
현재 박 대표가 만드는 장아찌의 종류는 명이, 초석잠, 참당귀, 오가피, 표고버섯, 곰취, 곤드레, 깻잎 등 10여 가지에 이른다.
특별한 비법이라면 절임 방식의 차별화이다. 박 대표는 고성, 양양, 인제, 양구 등 청정지역에서 나는 재료들을 직접 채집해 유해 세균을 박리하기 위해 초음파 세척기를 이용해 세척을 하고, 해양심층수를 이용해 3주 정도 1차 절임을 한다고 한다. 이후 간장을 기초로 식초와 설탕을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끓였다 식힌 후 재료에 부어 40일 정도 발효, 숙성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장아찌가 완성된다.
특히나 박 대표의 장아찌는 모두 항아리에 보관해 재료 본연의 아삭함을 살리고 있다. 소리㈜ 장아찌여왕의 공장엔 100여개의 항아리가 빙 둘러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이 명인의 손맛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장아찌, 세계시장 진출 위해 노력
장아찌를 가공해 대중화시키겠다는 꿈을 이루기까지 늘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요즘은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홈쇼핑,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판매되는 장아찌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이다. 박 대표가 사업을 시작할 즈음에만 해도 가내수공업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파는 곳만 있을 뿐, 전국을 대상으로 판매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막연했고, 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판로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자금 압박에 시달려 공장을 쉬는 날도 있었고, 물건을 팔고도 대금을 받지 못해 쫓아다니며 사정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포기라는 말은 떠오르지 않았단다.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장아찌는 딱 그런 맛이었고, 더 나은 맛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덕에 13개 항목의 품질 인증을 받고, 5개의 특허출원을 하게 되었다.
이제 명실상부 대한민국 장아찌 대표브랜드가 된 소리㈜ 장아찌 여왕은 연 20톤에 가까운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올해 처음 미국 수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11월 말경엔 베트남과의 수출 계약도 예정되어 있다.
장아찌 명인 박성현 대표는 “세계적이란 말을 하기엔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김치와 함께 장아찌도 가장 한국적인 음식의 대표주자가 되어 더 많은 국가에 수출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nurugo@hanmail.net
소리㈜ 장아찌여왕 박성현·도명숙 부부가 명이를 채집하고 있다.
소리㈜ 장아찌여왕에서 판매하고 있는 8종의 장아찌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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