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또 하나의 약속> 영화 개봉 시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예매율과 검색어 순위 등에 있어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는 높았지만 대형 영화관들은 <또 하나의 약속>에 상영관 수를 적게 배정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배정된 상영관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어서 많은 이들이 관람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롯데시네마는 <또 하나의 약속> 개봉을 앞두고 예정됐던 스크린 광고를 집행 1주일 전에 갑자기 취소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빤히 보였다. 시장 논리를 추구하는 영화관들의 별난 모양새를 삼성의 개입, 혹은 재벌들의 동업자 의식에 따른 묵시적 동의라는 관점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삼성과 대립각을 세우는 CJ그룹 계열의 멀티플렉스 CGV를 제외하고, 롯데시네마와 중앙일보 계열의 메가박스가 상영관을 거의 내주지 않은 점을 보면 삼성의 개입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였다. 이에 많은 영화인들이 나서서 대형 멀티플렉스에 항의했고 사회단체들이 영화 홍보에 앞장섰다. 시민들도 단체관람 동참으로 영화인들과 사회단체의 노력에 호응했고 <또 하나의 약속> 관계자와 황 대표 등은 영화가 상영되는 곳을 찾아 전국을 쫓아다녔다.
<또 하나의 약속> 개봉 후 삼성전자는 자사의 블로그를 통해 입장을 냈다. 한 직원이 쓴 글이었지만 그가 홍보부서의 부장이었고 또한 그 글이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 메인페이지에 올라왔기에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삼성의 공식 입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글은 영화가 사실을 왜곡한다고 비난했고 상영관 축소에 관해 삼성의 외압설을 부정했다. 그리고 삼성은 직원과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단체관람을 80년대에나 있던 일이라고 폄하했다. 그런데 피해자 입장에서는 삼성의 이런 반응이 반도체 산업재해의 본질을 비껴가는 뻔뻔한 주장일 뿐이었다.
속초·고성·양양에 동지들 생겨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또 하나의 약속> 개봉은 황 대표에게 여러 가지 계기를 만들었다. 황 대표가 지역 시민사회와 연결된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영화 개봉 전만 해도 황 대표는 혼자서 서울을 오가며 반올림 활동을 하고 있었고 황 대표가 지역 시민사회 관계자들과 교류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영화 개봉을 통해 황 대표가 속초시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로소 속초·고성·양양에 적극적인 동지들이 생겼다.
영화 개봉 후 어느 날 황 대표는 전화 한 통을 받았고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다. 황 대표가 약속 장소인 청초지구대 옆 커피숍에 나가보니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 모인 이들은 ‘황상기 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현재에도 황 대표의 활동을 지원하며 지역에서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 강남사옥 앞에 있던 반올림 농성장을 찾아 활동가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고 지역 고교생을 대상으로 <또 하나의 약속>을 상영하며 교육을 주재한 바 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삼성 반도체 산업재해 문제 해결을 기념하는 공연을 속초에서 진행했다. 이외에도 이들은 이따금씩 황 대표 자택을 찾거나 황 대표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하는 등, 산업재해로 자식을 잃은 황 대표 내외를 꾸준히 위로해 오고 있다.
교민들 초청으로 일본서 상영
<또 하나의 약속>은 국제 연대의 매개가 되기도 했다. 2014년 가을 황 대표는 교민 등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었다. 이때 나고야, 오사카, 도쿄를 돌며 <또 하나의 약속>을 상영했고 많은 일본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나고야에서는 지역의 한 문화시설에서 상영을 하는데 500명 정원이 꽉 차서 서서 보는 이들이 많았고 이러한 모습은 오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쿄 상영 때에는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었다. 영화를 본 이들은 기업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충격을 받았고 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일본 관객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자 황 대표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일본 방문에서는 현지 노동운동가들과도 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일본 사람들이 상급자의 지시에 너무 순종적이라 노동운동이 쉽지 않다는 하소연을 들려줬다. 이때 맺었던 일본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 됐다. 작년 3월 6일 서울에서 열린 유미 씨 추모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의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내한했고 올해 3월 속초에서 열린 추모식에도 일본 노조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영화를 만든 김태윤 감독과 배우 박철민 씨와의 인연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해마다 명절이면 김 감독과 박 씨는 황 대표의 집으로 선물을 보내오고 있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2014년 2월 <또 하나의 약속>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영등포 롯데시네마 앞에서 상영관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때의 황상기 대표.(사진=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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