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에 전화해.”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사건 사고 발생 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이 말이다.
뭐 대단한 사건, 사고가 아니어도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가장 먼저 119를 떠올린다. 그만큼 119 소방서는 이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캠페인만 보아도 119 소방대원의 하루 평균 출동시간 간격은 2분 37초라는 자막과 함께 출동 벨 소리에 자장면을 비비다 말고 바로 뛰쳐나가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든든하고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은 몇몇만의 생각이 아닐 것 같다.
소방서의 역할은 크게 셋으로 분류된다. 화재, 구급, 구조. 과거엔 화재에 편중되었던 소방서의 임무가 국민의 요구에 발맞춰 좀 더 국민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성소방서 신형진(37, 사진) 소방교가 관내 구조요원으로 일 한지는 6년 정도다. 공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소방공무원으로 전향했다.
처음엔 막연히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이란 생각에 뿌듯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건 단순히 봉사의 의미를 넘어서 사명을 지녀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구조 요원은 국민의 생명 보장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도 수없이 직면해야 했다.
바다에서 숨진 시신 수습 후 트라우마
고성은 지역 특성상 여름이 가장 바쁜 철이라고 한다. 해수욕장 인명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2년 전 여름 그에게도 트라우마처럼 지워지지 않는 사고가 있었다.
천진해변에 스킨스쿠버를 하던 부부가 바다에서 실종된 사건이었다.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초가 다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끝내 구조작업엔 실패했고, 사고 일주일 만에 차례대로 부부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남편과 아내를 차례로 물 위로 끌어 올리는 일을 했던 신형진 구조 요원은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한동안은 바다만 봐도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 괴로웠다고 한다. 조금 더 빨리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선 망각이란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란 선배들의 충고도 당시엔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인명 구조하고 도망친 송아지도 잡고
인명구조 업무를 담당한다고 해서 꼭 큰 사건 사고 현장만 찾는 것은 아니다.
벌집을 처리하기도 하고,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를 포획하고, 주인 잃은 개를 찾아주기도 한다. 외양간에서 도망친 송아지를 잡는 일, 화재로 불에 탄 금고를 부수는 일, 물에 잠긴 자동차를 견인하는 일 등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물론 생활 속에 발생하는 수많은 민원을 해결하다 보니 정말 별의별 일을 다 처리하는 해결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보람인 직업이기도 했다.
신형진 구조요원의 도움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란 말이다. 뭐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힘든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전하는 정말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하루 열 번 이상 출동하는 날 많아
이렇게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2019년 상반기 ‘자랑스런 소방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 타이틀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이란 생각도 들었단다.
신형진 구조요원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내년쯤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가족이 생기고 나면 자신의 일에 좀 더 책임감이 들 것 같다고 했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위급상황의 주인공이 자신의 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성소방서에 구조요원은 단 4명뿐이다. 이 인원으로 용촌리에서 고성 최북단 명파리까지 구조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 열 번 이상 출동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불평불만을 할 여유가 없었다. 24시간 근무를 하는 날에는 끼니를 거르는 일은 허다했고, 밀려드는 졸음을 참아내며 밤을 견디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신형진 구조요원의 꿈은 소박했다.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일.” 이미 그 꿈을 이뤘는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피땀을 흘려가며 고성군민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바로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김미영 기자 nurugo@hanmail.net
고성소방서 지방소방교 신형진씨가 정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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