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 씨의 죽음과 삼성의 직업병 문제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2011년부터 사전 작업이 시작됐다. 1심 결과를 보도로 접한 김태윤 감독이 황상기 대표를 만나기 위해 속초로 찾아와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그런데 그때 황 대표는 영화 제작이 과연 가능할지 확신이 없었다. 이전에 한 단체에서 영화화를 시도했지만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 그만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의 적극적인 자세에 더해 영화 제작도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 황 대표는 영화화에 동의했다. 이후 김 감독은 반올림의 시위가 있는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김 감독이 영화 제작을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 영화화에 나선 또 다른 감독이 있었다. 한번은 행정소송 공판이 끝난 후 재판 참석자들과 식사를 하는데 한 영화감독이 따라와 영화화에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황 대표는 그의 적극적인 모습에 딱 잘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난감했었다고 한다.
이와는 별도로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미 2009년부터 촬영되고 있었다. 홍리경 감독은 황 대표와 반올림이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홍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는 2014년 3월에 <탐욕의 제국>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제작비 마련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영화 투자금을 모으는 과정이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좋은 계기가 됐다. 온라인상으로 투자를 받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에 동참했다. 김태윤 감독은 처음부터 상업성을 추구하지 않았고 기업 등의 거액 투자자를 경계했다. 기업이 나서면 상업적 성공을 위해 영화에 간섭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온 방안이 크라우드펀딩이었다. 펀딩을 시작하자 만 원부터 시작해 몇 십만 원 정도의 소액으로 돈이 몰려들었다. 어떤 이는 결혼식 때 받은 부조금으로 펀딩에 참여했고 또 다른 이는 부모한테 물려받은 재산을 잘못된 곳에 쓸까봐 투자한다고 했다. 크라우드펀딩은 2012년 11월에 시작했는데 그 달에만 1억 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물론 이 정도의 금액은 영화 제작에 턱없이 부족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도 크라우드 펀딩은 계속됐고 그렇게 몇 억의 자금을 더 마련했다.
상당수 배우나 스텝들도 돈을 벌 생각으로 참여하기보다 영화 제작 자체에 의미를 뒀다. 김태윤 감독에게 먼저 연락해서 이 영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스텝도 있었다.
유미 씨를 위한 제사를 지낸 후 시작된 촬영에는 언론의 관심이 컸다. 황 대표는 그 중에서 강릉문화방송의 취재를 더 크게 느꼈다. 2010년 MBC 계열사 중 하나인 대전문화방송에서 반도체 산업재해에 대한 시사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사측의 취재 중단 지시로 방송이 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당시 대전문화방송에서는 이 문제로 몇 주 동안 사측과 제작진 간 갈등이 있었는데 결국 사측이 제작진의 요구를 묵살하고 방송을 막았다. 사전에 제작진이 프로그램 제작 승인을 받고 진행한 것이어서 외부 압력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이랬던 문화방송에서 <또 하나의 약속>에 관심을 가지자 황 대표의 느낌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약속>이 속초에서 촬영을 시작할 때 강릉문화방송에서 취재를 나왔고 해당 뉴스는 전국으로 송출됐다.
영화 제작을 마치고 2013년 12월에 경희대에서 펀딩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특별 시사회가 열린 날에는 4,000여 명이 북적였다. 그들 모두를 삼성 반도체 산업재해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이라 볼 수 있기에 그날 황 대표는 여간 기쁜 게 아니었다.
영화는 2014년 초 몇 번의 시사회를 더 거치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또 하나의 약속>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와 예고편 조회에서 상위권에 올랐고 SNS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자됐다.
그러나 이런 뜨거운 기대를 거스르는 일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계와 노동계, 예비 관객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2013년 가을 삼성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 중인 황상기 대표(사진=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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