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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택시운전사 황상기의 살아온 이야기<16> – 행정소송 제기
근로복지공단? 삼성복지공단?
등록날짜 [ 2019년10월07일 15시31분 ]

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 자료를 넘겨받은 근로복지공단은 2009년 5월 15일, 평택지사와 천안지사에서 자문의사협의회를 개최했다. 반올림에서는 산업안전공단의 조사와 반올림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도 산재 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봤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공단의 조사로는 부족하다며 자문의사협의회를 열었다.
당시 황상기 대표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결정을 내리기 전에 별도로 자문의사협의회를 개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들은 산재 신청자들의 담당 의사들이 업무 연관성이 있다고 봐도 이와는 달리 업무 연관성이 없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협의회는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럴 듯해 보여도 실제로는 직업병에 대한 전문성과 진실 규명의 열의를 가진 기구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황 대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의학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황 대표의 실낱같은 희망은 이내 배신감과 분노로 바뀌었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불승인 처분
황 대표는 이종란 노무사와 함께 자문의사협의회에 참관할 수 있었는데, 황 대표가 본 자문의사협의회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언론과 사회의 관심을 받는 중요한 회의임에도 회의 참석 의사 7명 중 2명이 회의 진행 중 졸았다. 이종란 노무사는 회의에 참석한 의사들의 이름을 모두 적고 나중에 확인해 봤는데 자문의사 중 산업의학 전문의는 단 1명밖에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자문의사협의회 이후 황유미 씨를 비롯한 피해자 5명에 대해 모두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산업재해는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간접 사실을 통해 추단할 수 있을 때에도 인정해야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와는 배치되는 결정을 내렸다.
불승인 처분 후, 황 대표, 그리고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 반올림 활동가들이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에게 항의를 하러 가자 공단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정보과 형사들이 공단을 바쁘게 오갔고 공단 직원들은 황 대표 등의 이사장실 진입을 막아섰다. 황 대표와 반올림 활동가들은 항의의 표시로 공단 건물 내에 머물렀으나 자정이 넘은 후 공단 직원들은 황 대표와 다른 유가족의 팔다리를 붙잡고 건물 밖으로 쫓아냈다. 그 과정에서 한 피해자의 유가족이 공단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행정소송 재판, 많은 관심 받아
황 대표와 피해자 및 유가족들은 2010년 초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행정소송 준비 과정에서는 사회적인 관심이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 재판 준비를 논의하는 자리에 시민단체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법조인과 의사,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소송의 대리인으로는 의사 출신의 변호사와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의 변호사, 이렇게 2인을 선임했다. 그런데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가 피해자 가족들의 변호를 맡겠다고 자청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그 변호사는 반올림 구성원들의 술자리까지 찾아와서 변호인단 합류를 간청했고 결국 세 명의 변호사로 변호인단을 꾸렸다.
재판 역시 열릴 때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언론이 재판을 크게 다뤘고 영화인들도 찾아와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황 대표와 반올림은 언론을 통해 삼성의 노동 안전 문제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행정소송 과정에서는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전자의 유착 관계가 드러났다. 2010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근로복지공단 내부 문서를 보면 ‘근로복지공단’을 ‘삼성복지공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문서는 근로복지공단이 산하 경인지역본부에 보낸 것으로, 삼성전자 산업재해 피해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삼성전자(주)가 보조참가인으로 동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원고는 산재 불승인 처분을 받은 이들이었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라 삼성은 원고도 피고도 아니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을 배려해주고 있었다. 노동자를 위한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재벌기업과 손을 잡은 형국이었다. 결국 삼성은 3대 로펌의 하나라 불리는 ‘율촌’ 소속 변호사 6명을 대동한 채 보조참가인으로 행정소송에 참여했다. 산재 사건에 기업을 보조로 참가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적어도 삼성전자 반도체 산업재해에 있어서는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2009년 4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시위를 진행한 황상기 대표.(사진=반올림)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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