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기흥공장에 대한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 결과는 반올림이 활동한 지 1년쯤 후인 2008년 연말에 나왔다. 유미 씨의 작업현장에 대한 작업환경 측정 조사는 2007년 9월에 있었지만 산업안전공단은 여기에 더해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집단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한국반도체협회 소속 6개 회원사와 29개 협력업체에서 근무한 전·현직 노동자 22만여 명을 대상으로 림프조혈기계 암에 대해 조사한 것이었다. 반올림은 역학조사에 회사와 피해자 측이 동시에 참여하자고 주장했지만 산업안전공단은 거부했고 조사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러한 산업안전공단의 태도는 피해자와 반올림의 불신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 한계 인정
조사 결과는 피해자와 반올림의 입장에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반도체 공정 현장에서 벤젠, 전리방사선, 산화에틸렌 등의 농도를 측정했으나 검출되지 않았거나 기준을 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또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반도체 생산업체와 협력업체 전·현직 직원 22만여명의 고용보험 자료와 인사기록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남성 노동자는 백혈병 발병·사망률이 일반인들보다 낮았고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약간 높은 수준이었지만 통계적으로 의미 없다고 봤다. 그러나 발표에서 의미 있는 결과도 공표됐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반도체공장 여성노동자의 비호지킨림프종(림프계에 발생하는 암의 일종)의 발병률은 일반인에 비해 2.67배로 현저히 높으며 조립공정에 투입된 생산직 여성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5.16배나 된다고 발표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조사의 한계를 인정했다. 연구원은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역학조사 추적기간이 짧았고 직무 세부사항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점을 밝혔다.
반올림은 이런 조사 결과를 두고 여러 비판을 내놨다. 먼저 현장 조사 시 반도체 사업장이 실제 작업환경을 그대로 제시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집단역학조사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고위험 집단의 존재를 통계로 뭉뚱그렸다고 짚었다. 반도체공장 노동자 중 특별히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이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과 한꺼번에 묶어서 보면 암 발병률이 낮아보이게 만든다는 얘기다.
반올림은 ‘건강 노동자 효과(healthy worker effect)’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노동자들이 일반 인구보다 전체 사망률이나 질병 발생률이 더 낮은 것으로 파악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은 취직을 하지 못하거나 일터에서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퇴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보정이 필요한데 적절한 내·외부 비교군 선택, 퇴사 근로자 추적, 통계학적 보정 등을 거쳐야 한다. 산업안전공단의 발표에서는 적절한 비교집단이 없어서 일반 인구와 비교했다고 연구의 한계를 밝힌 바 있다.
직업병연구센터 소장실 점거
또한 반올림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위험성을 축소한 것도 비판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노동자들이 일반인에 비해 백혈병 발병·사망률이 약간 높은 수준(각각 1.31배, 1.48배)이었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통계적으로 의미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반올림은 이를 섣부른 판단이라 비판했다. 림프종과 백혈병은 모두 조혈모세포에서 기원하는 암으로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느냐에 따라 림프종과 백혈병으로 구분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비호지킨림프종은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보면서 백혈병의 위험성을 낮게 본 것은 섣부른 단정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가족과 반올림 활동가들은 산업안전공단에 항의 방문을 했고 직업병연구센터 소장실을 점거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황상기 대표는 반올림 활동 1년을 거치며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황 대표는 더 이상 산업재해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삼성전자 직원에게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황 대표는 직업병연구센터 소장실을 점거하며 소장에게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따져 물었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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