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자생식물원으로 가는 길 한쪽 편에 건물 외벽이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신축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해밀요양원’이며 매주 목요일 오전에는 이곳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서예 수업이 진행된다.
요양원 안으로 들어서자 파스텔 톤의 인테리어가 사람을 맞이하고 스무 명이 넘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탁자를 앞에 두고 서예에 열중하고 있다. 연세를 확인해보니 90세 전후의 분들이 많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잡고 한 자씩 글자를 써나가고 그 옆에서 깔끔한 노란색 앞치마를 착용한 요양보호사 여러 명이 어르신들을 돕고 있다.
무표정하게 글씨를 쓰는 분도 있지만 또렷한 눈매로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하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 어떤 분은 휠체어를 타고 있어도 글을 쓰는 모습이 그리 서툴지가 않다.
아흔 넷으로 가장 연장자인 동명동에 사는 서보비 어르신은 글을 쓰다가 잠시 다음 글자를 어떻게 쓸지 구상하는 듯 붓을 들고 의자에 기대 흰 종이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릴 적 먹을 갈아보고 최근에 다시 붓을 잡아 보는데 생각보다 재밌네요.”
어르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노학동에 거주하는 86세의 김복술 어르신은 이전에 서예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글을 쓰면서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좋은 선생님 덕에 서예를 하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도 안정이 되네요.”
올해 초부터 시작된 해밀요양원의 서예프로그램은 속초 중앙로 ‘해정서예연구원’ 원장이자 속초미술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덕우 지부장이 지도하고 있다. 이 원장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 과정을 맡았고 서예에 적극적인 어르신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도를 해보면 의욕이 대단하신 분들이 있어요. 서예 시간이 짧아서 아쉬워하는 어르신도 계시지요. 처음 해보신 분들도 붓을 몇 번만 잡으면 금세 실력이 좋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밀요양원에서 진행되는 서예 과정은 요양원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이 아니라 주간에만 요양원을 찾는 어르신들을 위한 ‘주간보호’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속초 각지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은 아침이면 통원 버스를 이용해 마치 출근하듯 해밀요양원으로 가서 오전과 오후에 걸쳐 각각 한 가지씩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프로그램들 중에는 체조, 공예, 마사지도 있다. 해밀요양원 이세민 시설장에 따르면 서예는 주간보호 프로그램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서예는 어르신들이 하시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추진해서 실제로 해보니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다른 노인복지기관에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덕우 원장은 연말에 어르신들 작품으로 전시회를 고려 중이다. 아흔 전후의 어르신들이 만들어낼 전시이기에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이광호 객원기자
매주 목요일 오전, 속초 노학동 해밀요양원에서 이덕우 원장이 진행하는 서예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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