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택시운전사 황상기의 살아온 이야기<14> – 진실을 향한 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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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하는 삼성, 시비 거는 경찰

등록날짜 [ 2019년09월23일 11시00분 ]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고된 과정을 요구했다. 황상기 대표와 반올림 활동가들이 삼성 본사나 기흥공장 앞에서 시위를 진행할 때면 여러 난관이 있었다. 경찰이 마이크 사용을 규제하는 관계로 큰 목소리로 외치고 나면 금방 목이 쉬었다. 삼성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게 되면 삼성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황 대표와 반올림 활동가들이 귀찮게 느낄 정도로 쫓아다니며 감시했다. 시위하다가 밥을 먹으러 가면 뒤를 밟으며 동태를 살폈고 지하철을 타러 가면 역까지 따라와 확인했다.
반올림이 인쇄물을 만들어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나눠주면 회사 경비들이 직원들에게서 압수해갔다. 황 대표가 경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항의하면 경비들은 반올림의 인쇄물을 직원들한테서 빼앗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후 경비들은 회사 정문에서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가서 직원들로부터 인쇄물을 압수했다.
그리고 경비들이 시위를 하는 자신을 가로막아 지나가는 직원들이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경비들은 황 대표를 발로 차기까지 했다. 어떤 때에는 황 대표의 주위에 여러 대의 버스를 주차했다. 버스와 버스 사이에 틈이 없을 정도로 차를 붙여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과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는 삼성의 대처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삼성 측이 사람들의 시선을 막을 때면 황 대표는 너무나도 맥이 풀렸다. 하지만 가끔씩 시위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만나면 다시 힘이 났다.
황 대표가 기흥공장 앞에서 시위를 하는 동안 ‘독극물’이라고 적힌 탱크로리들이 수시로 공장 안으로 드나들었다. 불과 몇 분마다 한 번씩 ‘독극물’ 탱크로리들이 기흥공장 입구를 들어갈 때도 있었다. ‘독극물’이라고 적힌 표시는 나중에 ‘유독물’이라는 글자로 바뀌었는데 ‘유독물’ 탱크로리 역시 꾸준히 기흥공장을 드나들었다.
시위 진행 시 경찰들은 황 대표와 반올림 활동가들을 적대적으로 대했고 삼성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찰들은 황 대표가 인도에서 1인 시위를 해도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었고 어떤 경찰은 황 대표에게 시위를 하려면 증거를 대라고 비아냥댔다. 경찰 중에는 황 대표를 회유하는 이들도 있었다. 밥이나 술을 같이 하자고 말하기도 했고 기흥공장에서 속초까지 차를 태워주겠다는 경찰도 있었다. 그러나 황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경찰의 표면적인 호의에 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황 대표가 경찰을 대하는 이러한 자세는 삼성 직원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씩 시위를 하고 있으면 안면이 있던 삼성전자 직원이 나와서 음료를 건네며 말을 걸어올 때가 있었지만 황 대표는 음료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손으로 받아들기는 해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대책위가 꾸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초 어느 날 삼성의 한 엔지니어가 당시 수원에 있던 반올림 사무실로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는 방사능 등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부서의 직원으로 그날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 둘을 데리고 와서 공장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그가 일한 부서에서는 동료 3명이 중병에 걸렸다. 환자들의 병명은 난치성 질환인 백혈병, 루게릭병, 그리고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직원은 자신도 중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반올림을 찾았다. 그가 일한 부서에서는 방사능 잠금장치를 풀고 일했는데 이는 현장책임자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서에서 방사능측정기를 확인하면 측정 바늘이 끝까지 가서 방사능 수치가 실제로 어떤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사고를 막기 위해 잠금장치 관리에 더 엄격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현장책임자보다 높은 상급자는 잠금장치를 적정 수준에 맞춰놓기만 할 뿐 그 이상의 진전된 조치는 하지 않았다. 그 삼성 직원은 이와 같은 증언을 했지만 다음날 다시 반올림 사무실로 왔다. 그는 회사에서 자신이 반올림을 찾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도록 반올림이 자신의 증언 내용을 언론에 발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요구에 반올림은 그의 증언을 비공개하기로 했지만 몇 개월이 지난 후 뒤통수를 맞았다.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 그 엔지니어가 삼성 측 참고인으로 나와서 삼성에 유리하게 증언했다. 국회 증언 전 반올림 활동가들이 그에게 사실 관계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소용없었다. 이후 반올림에서 그 사람에게 연락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고 소재를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었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시위 중 다쳐 길에 쓰러져 있는 황상기 반올림 대표.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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