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 음악이다 보니 음악교육 상담 의뢰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상담 의뢰자 학부모나 학생들 중에 절대음감에 대한 절대적 맹신자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절대음감의 아주 간단한 사전적 개념은 다음과 같다.
기준음을 듣지 않고서도 음의 높이를 음이름으로 알아맞히는 능력.
예컨대, 기준음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음을 들었을 때 그 음의 높이가 A음인지, 혹은 C음인지를 바로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절대음감에 대한 개념을 좀 더 학술적으로 자세히 언급하려면, 얘기가 무척 길어지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이러한 능력은 학습에 의해 길러진다고 하는데, 학자에 따라 약간씩 견해에 차이는 있지만, 학습의 적기(適期)는 대략 만 4세에서 7세 정도 사이라고 한다.
절대음감이 있으면, 여러 모로 편리한 점이 많다. 악기의 반주 없이도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조율기의 도움 없이도 현악기를 조율할 수도 있다. 작곡가의 경우, 악기의 도움이 없이도 5선지 위에 바로 작곡을 할 수가 있다.(기타곡 작곡의 경우는, 피아노곡과 달리 5선지 위에 바로 작곡하기가 어렵다. 기타는 음색이 매우 다양하고, 포지션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절대음감 능력만으로는 작곡이 거의 불가능하다. 즉 일일이 음색을 들어보고, 포지션을 직접 확인 해봐야 한다.)
그런데 이 절대음감이란 개념은, 암묵적으로 현재 서양음악의 평균율적인 조율 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기준음(A음)도 440-442Hz이다. 그러므로 절대음악의 소유자에게는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난 음의 체계에서는 불편함이나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조율 체계가 지금과 다른 옛 악기나 기준음보다 반음이 낮게 조율된 기타 소리를 들으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조옮김 악기인 트럼펫이나 클라리넷 같은 악기 소리도 악보와 실제 소리가 다르므로 불편하거나 혼란스럽게 느낄 수가 있다.(※트럼펫이나 클라리넷은 Bb조 악기로, 악보보다 한 음이 낮게 나는 악기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적 재즈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나위 합주곡 같은 전통 국악곡을 들으면, 절대음감 소유자에게는 온통 불협화음의 기이한 음악으로 들릴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절대음감 소유자에게는 음악적 장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음악에서 음높이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만이 음악적 능력의 전부가 아니다. 음높이는 음악의 요소 중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음색, 음의 길이, 셈여림, 템포 등등 음악의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므로 음 높이와 관련된 능력 중의 하나인 절대음감에 대해 너무 절대시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음악적 창의력은 매우 복합적인 음악 능력이다.
그래서 음악사적으로 볼 때, 모차르트나 브람스같이 절대음감을 가진 작곡가도 있었지만, 베를리오즈나 바그너같이 절대음감이 없었던 훌륭한 작곡가들도 많았다.
연주자도 마찬가지이다.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절대음감을 가진 연주자에게는 좋은 점이 많겠지만, 피아노 같이 이미 조율이 된 건반 악기에서는 절대음감을 가진 연주자가 크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그럼, 본질적인 의미에서 좋은 음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음악을 통해 누구보다도 아름다움을 잘 느끼고, 감동이 되는 그런 음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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