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일명 꽃마차라 불리던 이동식 사진관이 있었다. “사진 찍어요! 사진…” 소리가 마을 어귀에 울려 퍼지면 동네 꼬마들은 마치 엿장수 뒤를 졸졸 쫓듯 꽃마차가 멈추는 곳마다 큰 구경거리인 듯 몰려들곤 했었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꽃마차는 마을 사진관이었고 울긋불긋 화려한 조화를 배경삼아 막 세수를 마치고 참빗으로 머리를 단정히 빗은 아이들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어린 시절의 한 때를 사진으로 남겼었다. 지금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휴대폰에 탑재된 카메라 기능으로 무한대로 사진 찍기가 가능한 시대를 살기에 젊은 층에겐 상상이 안 되는 옛날 옛적의 이야기이다.
최선호(75, 사진) 금강산림교육센터 대표는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 묵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오랜 사진 기록은 1968년 고성군청 문화공보실에서 근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공보실에는 네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그들이 고성의 역사, 문화, 예술 전 분야에 걸쳐 기록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카메라를 손에 쥐었던 그 첫 날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카메라 렌즈 안 피사체들은 그저 사진 한 장이 아닌 역사였고 시대였고 삶의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작정한 일은 아니었다. 지난 50년 간 카메라에 세월을 담아내는 일을 계속 해오면서 수 만장의 사진을 모으게 됐고, 당시엔 별 것 아니었던 순간들이 이제 지나온 시간의 흔적으로 남아 역사가 되었다.
그는 한 때 사진에 매료되어 15년간 몸담았던 고성군청을 나와 컬러 사진 현상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컬러시대가 시작된 즈음이었다. 당시 4500만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컬러 자동 현상기를 구입해 고성 최초로 컬러 현상소를 열었다. 이 때만해도 손님들이 맡긴 필름을 인화해주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늘을 엿보는 재미에 빠져 살았었다. 그러다 문득 ‘지나고 나면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고성군청 근무시절 그리고 각 지역 신문사를 돌며 기자생활을 하는 틈틈이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이후 기록이 될 만한 사진들을 촬영해 남겼다.
그렇게 50년 가까운 사진작가로서의 삶은 40회 정도의 사진전과 사진집을 펴내면서 세상과 소통해왔다. 일흔 다섯의 백발성성한 노인이 되었지만 그 세월만큼의 역사와 기록을 간직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최선호 대표. 그는 “1960년대부터 이어진 고성의 변천사를 사진으로나마 후손에게 알려줄 수 있는 역사박물관이 건립되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진 한 컷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의 대답은 “고향”이었다. 인생의 황혼을 맞아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면 화두는 언제나 고향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고성의 옛날 옛적의 이야기가 그의 사진 속에선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최 대표는 ‘고성갈래구경(九景)길’ 코스를 발굴, 운영하고 있는 고성갈래길본부를 창설해 대표 이사를 맡았으며,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nurugo@hanmail.net
1970년대초 간성 우시장 전경.
1960년대 말 토성면 봉포리해변에서 미역을 채취해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
1968년 옛 고성군청의 모습.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마을 부녀회원들이 식량 증산을 위해 논두렁에 콩을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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