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솟구치는 불기둥과 마을 전체를 뒤덮은 검은 연기에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았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폭발음, 사람들의 비명과 울음이 한 데 섞여 어디부터, 누구부터 구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집 안에 사람이 있어요. 살려주세요!”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 미친 듯이 달려갔다. 집의 반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마당입구엔 할아버지 한 분이 쓰러져 있었다. 의식은 있었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리가 풀린 할아버지를 부축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자 이번엔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한쪽 팔을 움켜쥐고 신음하고 있었다. 손등에 살점은 뜯겨져 있었고 출혈이 심했다. 일단 급한 대로 붕대를 가져다 지혈을 시키고 가장 가까운 보건소를 찾아 치료를 받게 했다. 그리고 다시 현장에 돌아왔을 때 상황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할 만큼 심각했다. 이미 불길은 돌풍을 타고 성난 사자처럼 주택과 산림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소방차량과 피해지역에서 빠져나가려는 자동차들이 한데 엉겨 도로 곳곳은 막혀버렸고 사람들의 아우성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지난 4월 4일 밤, 간성의용소방대 함연옥(59) 대장의 기억은 너무나 참혹했고 선명했다.
밤낮없이 재난사건사고 현장에
그녀가 처음 의용소방대에 지원한 것은 1998년. 지난 20년 동안 고성에서 발생됐던 재난사건사고 현장엔 늘 그녀가 있었다.
의용소방대는 소방서의 업무를 지원하는 무보수 봉사단체다. 어떤 보상이나 인정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을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사건 사고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언제고 휴대폰에 ‘의용소방대 지원바람’이란 문자가 뜨면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오늘은 무사히’란 기도는 아주 오랜 습관이 되어버렸다.
함 대장이 의용소방대에 지원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축사와 정육점을 운영해야했고,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했다. 생업만으로도 충분히 고단한 삶이었고 살림하랴, 아이들 돌보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그렇게 남편을 도우며 한 가정의 아내로 엄마로만 살았던 함 대장은 의용소방대대원 모집공고를 보게 됐다. 이름도 생소했던 의용소방대에 대해 알아본 후 그녀는 가족들에게 아주 힘들게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당연히 반대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엄마가 소방대원이 되는 거에요? 왠지 멋있을 것 같아요”라며 응원해줬고, 남편도 “좋은 일 하는 거니까”라며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의용소방대대원의 길. 지나고 보니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을 잘 견뎌왔는지…. 돌이켜보면 혼자가 아닌 가족의 도움이 있어 지켜낼 수 있었고, 남의 일이 아닌 내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지난 20년의 시간을 회고했다.
“대통령표창, 대원들과 함께 받았어야”
최근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고성산불재난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선정되면서 대통령표창을 받게 된 것이다.
“개인이 아닌 단체로 상을 받았어야하는데, 함께 고생한 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고, 특별히 나 혼자 잘 한일도 아닌데 큰 상을 받게 되어 부끄럽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아직도 고성산불로 인해 고통 속에 있는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일이라며 걱정의 말도 덧 붙였다.
함 대장은 6년 째 간성의용소방대 대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고성군의용소방대연합회장, 강원의용소방연합회 수석부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간성의용소방대 대장직은 6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함 대장은 조만간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줄 예정이다. 대장직을 내려놓은 후의 계획을 들어봤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는 계속 이어갈 생각이에요. 의용소방대로서의 활동은 못하겠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 힘을 보태고 싶어요.”
건강 허락하는 한 봉사 계속
때 마침 울리는 문자, 함 대장은 습관처럼 걱정스런 표정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혹시 소방서에서 보낸 문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엄마, 대통령 표창 축하드려요.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큰 아들이 보낸 축하 메시지였다.
어린 시절 엄마의 빈자리를 한 번도 탓하지 않고 잘 자라 준 두 아들이 어쩌면 대통령표창 보다 더 값진 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곧 그녀는 의용소방대장이 아닌 함연옥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봉사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30년 째 간성시장 초입에 자리한 수성정육점 사장님, 가끔 그녀는 외출 중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외출은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외출이라는 것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김미영 기자 nurug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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