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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격리’보다 ‘공존’으로…사회적 비용 줄이고 치료 용이
이탈리아 사례로 돌아본 우리의 정신보건 / 녹색병원 백재중 과장 ‘자유가 치료다’ 강연 / 청와대 국민청원 속초시민 홍수민 씨 주최
등록날짜 [ 2019년07월29일 15시39분 ]

선진국의 정신보건시스템은 어떨까? 지난 21일 속초 중앙로 문우당서림에서 열린 ‘자유가 치료다’ 강연에서는 이탈리아 사례를 통해 우리의 정신보건시스템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사로는 작년 여름 <자유가 치료다>라는 책을 펴낸 녹색병원 백재중 내과 과장이 나서 열강을 펼쳤다. 이날 백재중 과장은 내과 의사로서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정신질환 치료에 관한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의료 제도에 오래도록 관심을 기울여 온 전문가로서 바람직한 보건시스템에 대해 시민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번 강연은 조현병 가족을 둔 속초시민으로 지난 5월 조현병 정책 수립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을 했던 홍수민 씨가 마련했으며, 이에 뜻을 함께하는 지역민들이 행사 진행을 도왔다. 이날 객석에는 최종현 속초시의회 의장, 유혜정·방원욱 시의원 외에 속초시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들도 참석해 지역 정가·기관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시의회는 지난 15일 조현병 당사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는 조례 마련을 위해 간담회를 개최한 바 있다.

감옥에 가까웠던 정신병원
프랑코 바살리아(Franco Basaglia 1924~1980). 그는 백재중 과장의 저서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로 이탈리아 정신보건의 개혁을 이끈 사람이다. 바살리아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정신병원의 문제점을 깨닫고 환자의 강제집단수용을 지양하고 치료와 재활을 위한 사회개혁에 앞장섰다. 그는 2차대전 중 파시스트에 대항해 싸우다가 잡혀 수감생활을 했는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감옥 같던 정신병원을 혁파하고 이탈리아의 정신보건이 지역사회에 녹아들 수 있는 디딤돌을 놓았다.
20세기 초·중반 이탈리아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을 범죄자처럼 다뤘고 정신병원은 병원이라기보다 감옥에 가까웠다. 정신병원은 일반 보건의료 시스템과 분리돼 운영됐고 판사가 정신병원 입원을 결정해 입원 사실은 범죄기록으로 남겼다. 치료 목적의 자발적 입원은 불가능했고 환자 치료보다는 사회 보호가 중시됐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68년 이후의 일이다. 그해 ‘마리오티(Mariotti) 개혁’을 통해 환자가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할 수 있게 됐으며 정신병원 입원 사실을 범죄기록에서 삭제했다.
바살리아의 노력으로 마련된 1978년 ‘바살리아법’에서는 정신보건에서 ‘탈(脫)’ 정신병원을 지향하고 지역사회를 중시하게 됐다. 이 법에 따라 이탈리아에서는 정신병원이 폐쇄되기 시작했고 대신 종합병원에 인구 20만 명당 15병상을 설치했다. 그리고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가 정신질환에 대응하는 중심 역할을 맡았다. 이 기관은 현재 이탈리아 전역에 1,400개소 정도 있으며(인구 15만 명당 4.17개소) 1개소당 의사 2~4명을 비롯해 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 30~40명의 인력이 근무한다.
정신보건센터 외에 환자의 주거시설도 있는데 이는 감옥 같던 정신병원과는 다른 환경을 제공한다. 여기에서는 치료보다는 거주가 목적이라 시설이 가정과 비슷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적 협동조합도 정신보건에 큰 역할을 한다. 정신장애인이 정신보건센터나 비장애인과 공동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해 정신장애인 고용에 앞장서고 있다.
대부분 바살리아법 시행 이후 설립된 관련 단체도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이 단체들은 1993년에 전국연대조직 ‘UNASAM’을 구성했다. 이 조직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환자 인권 개선 활동을 한다. 이들은 관계 당국과 함께 정신장애인에 대한 ‘낙인 반대 캠페인’도 펼친다.
이러한 노력들은 이탈리아에 의미 있는 성과로 나타났다. 정신보건 예산과 강제입원 환자가 줄었으며 정신장애인의 범죄율도 감소했다. 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협동조합의 발전도 사회와 경제에 의미 있는 일이다.

속초·고성·양양만의 모델을
우리나라는 최근에 정신보건시스템이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탈리아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정신병원이 정신보건시스템의 중심이고 지역사회의 인프라가 부족하다. 강제입원과 장기입원 비율이 높고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이 없으며 정신장애인들은 혐오와 낙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높은 편인데 정신장애인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정신장애인의 자살률은 비장애인의 8배이고 신체장애인의 3배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많은 이들이 정신장애인을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위험한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16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1.4%이고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0.1%이다. 2017년 경찰통계연보에도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3.2%이지만 정신장애인은 그 비율이 0.39%에 지나지 않는다. 살인, 강도, 방화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비율도 낮다. 인구 10만 명당 강력범죄자가 55.6명인데 정신질환자 중 강력범죄자는 35.2명이다. 따라서 정신장애인을 예비 범죄자로 보고 무작정 그들을 병원에 가두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편견과 낙인은 정신장애인의 가족이나 당사자가 병을 숨기게 만들어 치료를 늦추고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걸었던 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격리’보다는 ‘공존’을 택했고 이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치료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보건을 지향한다면 속초·고성·양양만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고려할 만한 사례이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강연 연사인 녹색병원 백재중 내과 과장. 배경에 그가 준비한 자료 사진 속 ‘Proud To Be Crazy’(미치는 것에 당당하라)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 문구는 매드 프라이드(Mad Pride)에서 누군가가 든 팻말에 적힌 것이다. 매드 프라이드는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해 여러 나라로 확산된 정신장애인 축제로 1789년 7월 14일 프랑스혁명으로 바스티유 감옥이 열리고 정신장애인들이 풀려난 일을 기념한다. 정신장애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21일 문우당서림에서 열린 <자유가 치료다> 강연.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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