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마냥 흙이 좋았습니다. 흙을 만진지 어느새 50여 년, 흙의 숨소리를 들으며 불을 지피며 물레를 돌리며 외길 인생을 살았습니다. 돌아보면 지나간 시간들이 아쉬워, 내게 힘이 남았을 때 도자기 한 점이라도 더 만들어야한다 그렇게 채찍질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4년 전 고성군 토성면 학야리에 터 잡은 도예가 소은 조규영(72) 선생의 이야기다.
대한민국 최고의 도자기 명장인 소은 선생의 이력은 도예에 관해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놀랄만한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여론협회 금상, 대한민국 국전 공예부 출품 수상, 제12회 대한민국 신미술대전 대상, 아시아 국제미술제 초대작가, 사단법인 기로미술협회 세계미술대상, 교육부장관상, 문화재청상, 최우수명장상 수상 등 예술인이 생전에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기록으로 한국 도예역사에서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소은 선생이다.
소은 선생의 작품 가치를 금액으로 정한다는 것이 불가한 일이긴 하지만, 현재 그의 작품은 중당 감정가(중당 90만원)가 가장 비싼 작가이기도 하다.
묵묵히 견뎌온 도자기 외길인생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작가라는 수식은 그가 만든 도자기가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에게 국가적 차원으로 전하는 선물이 되기도 했기에 가히 ‘세계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묵묵히 도예가로서의 삶을 견뎌온 소은 선생의 도예가로서의 삶은 이렇게 시작됐다.
소은 선생의 고향은 도자기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기도 이천이다. 이곳에선 개밥그릇 마저 자기로 만들어졌다 하니 그가 일찌감치 도예가의 꿈을 품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도예가로의 삶은 운명과도 같았고 가마 속 뜨거움처럼 불꽃같았다. 한국 도예 역사에 한 장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치열했던가.
일흔을 넘긴 지금에도 그의 열정은 쉽사리 식을 줄을 몰랐다.
소은 선생이 고성에 터를 잡은 이유는 현재 그가 보유하고 있는 1,000여 점의 도자기와 기증 작품 1,000여 점을 더하여 ‘도자기 테마파크’ 조성하겠다는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이미 기증된 작품들에 대해서는 기증확인서도 다 받아놓은 상태이다. 마음 속 바람은 하나뿐이다. 후일 이 작품들이 교육 자료로 사용되어 지속적인 인재 양성에 도움을 주고 도자기의 가치를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문화가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현대자기를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전통 도자기는 관상용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원래 도자기가 만들어진 이유는 생활용기로의 쓰임 때문이었다. 토기가 시작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인데, 이를 토대로 발전해온 도자기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의 가을 하늘을 담아놓은 듯 지적인 미를 지닌 청자, 여백의 미가 평온과 순수의 세계로 인도하는 백자, 표현의 자유로움과 조화의 멋을 지닌 분청이다.
소은 선생의 작품엔 한국 도자기가 지니는 자연의 순수와 자유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에 섰던 도자기는 과거의 것이라는 이름으로 잊히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예가의 꿈을 꾸지만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가난과 고독이라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꿈을 접고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술만을 고집해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소은 선생 역시 도자기 외길인생을 살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견뎌야했다. 아는 것이라곤 흙뿐이었고 흙으로 빚어낸 도자기가 전부였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사회 경험이라곤 결혼 초 두 달이 전부였고 그렇게 받은 월급이 280원이었단다.
“도자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남편과 결혼했어요. 처음에는 도자기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한 점만 팔아도 경제적으로 여유롭겠구나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남편은 당장 닥쳐있는 가난보다 작품 욕심이 더 컸어요. 어렵사리 작품이 팔려 겨우 한 고비 넘기는 구나 내심 기뻤는데 남편은 그러지를 못하더라고요. 작품을 팔고 와선 몇날 며칠을 잠 못 자고 끙끙 앓다가 기어이 받은 돈을 다시 들고 가 작품을 찾아오는 거예요. 때로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도자기들이 보기 싫을 때도 있었어요.” 소은 선생 아내의 이야기이다.
한국 도예역사 한 축 담당
작가에게 작품은 인생이고, 인생의 의미이고, 인생의 전부라 할 만큼 소중하다. 소은 선생은 오직 그 가치를 위해 살아 온 것이다.
그는 지금껏 열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초대전에 참여했다. 국내외에서 열리는 각종 미술제, 도자기 대전에서 심사를 맡으며 그는 한국 도예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소은 선생의 작품적 특징은 주로 양각기법을 사용하는데, 거기에 빗살무늬를 비롯해 다양한 무늬를 조각해 넣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성인 몸의 세 배쯤 되는 크기도 있고 손안에 쥐어질 만큼 작은 도자기도 있다. 이렇게 크기에 따라 대작과 소작으로 나누는데 그 차이점은 처음부터 흙과 물을 어떻게 혼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소작은 흙을 질게 해도 되지만 대작은 흙을 질게 하면 쌓아올리지 못하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십년의 세월을 흙과 함께 살았다. 쌓아 올리다 무너지고 굽다가 깨지고 그 인고의 세월은 도자기만이 아닌 작가의 삶이기도 했다.
고희를 넘긴 나이, 인생의 황혼을 맞아 그 동안 자신이 땀과 눈물 영혼이 담긴 작품들을 자식처럼 돌보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흙, 물, 불, 바람 그리고 인간의 숨, 도자기가 품은 생명력은 하나의 작은 우주와 같다. 이 신비한 우주는 때로는 자연이고 때로는 인간의 마음이 된다.
소은 조규영선생의 마지막 바람인 ‘도자기 테마파크’를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고성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미영 기자 nurugo@hanmail.net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 틀을 만들고 있는 소은 조규영 선생.
소은 선생이 지난 오십 년간 빚어낸 도자기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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