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이 기울던 1906년 설악권 향토사에 길이 남을 일이 있었다. 1906년 9월 8일 양양읍 관아 뒷산에 ‘현산학교’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교육을 통해 힘을 기르는 것만이 쓰러져가는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애국계몽운동의 취지로 시작된 신학문 학교인 현산학교의 설립과 운영 과정이 당시 <황성신문>에 상세히 보도되었다.
황성신문은 1898년 남궁억 등이 주축이 되어 창간한 신문으로 당시 박은식 등 개신유학자들을 대표하는 신문이었다. 그래서 전직 황성신문 사장인 남궁억 양양군수가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한 현산학교 운영에 대해 신문은 큰 관심을 보였다.
황성신문은 주민들의 참여로 현산학교가 문을 연 것은 벽촌 양양으로서는 일대 사건이라며, 전국에서도 이를 본받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동포가 양양군민과 같으면 전국 개명(開明)이 조만간에 이뤄지리라는 최고의 찬사까지 보냈다.
당시 보도된 황성신문의 국한문 혼용 기사를 다시 정리하였다.
양양흥학(襄陽興學)
양양군수 남궁억씨가 학부(學部)에 보고하기를 본 군(郡)이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립된 곳이라 신학문을 미처 알지 못하지만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난 이들이 많아 교육을 받게 하면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기에 지역의 유림들을 소집하여 학교 설립의 방침을 충분히 논의하여 기부를 받거나 향교에서 거두는 곡식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관가 소유의 건물 한 구역을 선택해 ‘현산학교(峴山學校)’라고 이름을 정하여 이미 학교 건물은 갖추고 물품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선생을 구하기 어려워서 아뢰어 청하오니 고등소학교(高等小學校)와 보통사범학과(普通師範學科)에 적용할 책과 교사 1인을 뽑아서 보내주셔서 인재를 양성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1906년 5월 21일 황성신문>
교사연빙(敎師延聘)
양양군에서 경내 유지인사들이 군수 남궁억씨의 지도로 인하여 사립학교를 군내 읍저(邑底)에 설립한다고 학부(學部)에 보고함은 이미 보도했거니와 최근에는 교과서적과 제반 물품을 다수 구매하여 교사 정우용(鄭瑀鎔)씨가 함께 가지고 왔는데, 정씨는 일찍이 일본에서 8, 9년 유학하여 사기(砂?)전문과를 졸업하고 신학문에 밝은 사람이라더라. <1906년 7월 26일 황성신문>
양양교황(襄陽校況)
양양군에 세워진 학교의 상황에 대해 이미 보도하였거니와 최근에는 음력 7월20일(양력으로는 9월 8일)에 양양군내에 사립 현산학교에서 개학(開學)하는데, 교장 남궁억, 교수 정우용씨 등이 학도와 방청인들에게 대하여 신학문의 필요와 학교 상황을 설명한 후에 동국역사(東國歷史), 대한지지(大韓地誌), 산술(算術), 일어(日語) 등 과목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입학한 학도(學徒)가 1백46명이라 대부분 양양군 총준(聰俊)이오, 나아가 강릉과 간성 등 인근 군에서 공부하러 온 자도 있어 넓은 교실이 모자랄 정도로 일장 성황을 이루었다. 더구나 입학 지원자가 끊이지 않아 지난 8월 20일에 입학생을 추가로 다시 모집하고 있다. 학교 설립 내력을 탐문한 즉, 황상(皇上) 폐하의 흥학(興學) 조칙과 강원도 관찰부가 만든 학교 설립 훈령을 받들어 양양군의 인사(人士)들이 나서서 신학문의 필요를 깊이 깨달아 학교 설립 비용을 앞 다투어 출연 기부하고, 앞뒤로 거두어 모은 자재가 모두 합쳐 엽전 삼만여량에 이르고 향교에서 매년 걷는 조(租)가 1백석에 이른다. 많거나 적거나 도와주는 사람들이 지금도 끊이지 않으니, 무릇 우리 동포가 대부분 양양군민 같으면 전국이 개명(開明)하는 게 멀지 않아 이뤄지리라더라. <1906년 9월 26일 황성신문>
현산학교 초빙 교사 정우용은 구한말 국비 유학생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군수로 재직하기도 한 인물이다.
기사를 보면 당초 양양의 유림과 남궁억 군수가 개교 초기부터 현산학교의 운영에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역사의 기록에는 학교 설립을 두고 남 군수와 유림의 갈등이 상당히 심했다고 전한다.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현산학교에 양양 유림계 지역 인사들이 함께 한 것은 분명하다.
유림의 재산인 향교의 운영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거두어들인 곡물 1백석을 학교 건립과 운영에 내놓는다는 것은 당시 유림계 다수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군수가 강압적으로 해도 이뤄질 수 없다. 그리고 남궁억 양양군수가 교장이라 하더라도 현산학교는 관립이나 공립이 아닌 사립학교로 출범하였는데, 신문에서는 학교 건립 비용을 조성하기 위해 양양 인사들이 앞 다투어 엽전 3만량을 출연 기부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현산학교 건립과 운영을 위해 만들어진 현산학교평의회에는 당시 유림 대표들이 참여하였는데, 여기에 양양 유림계 대표인 이석범의 동생인 이국범(李國範)의 이름도 올라가 있다.
양양 현산학교의 개교를 지역주민이 동참하는 애국계몽운동의 모범사례로 판단한 황성신문은 신문 사설로 양양군민들의 신학문 교육 열기를 크게 치하했다.
예전부터 푸른 바다가 뽕나무밭으로 변한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양양군의 인사(人士)들이 이렇게 과감하게 변할 줄은 몰랐다. 양양은 동해안 바닷가에 고립된 벽촌 읍이라 토양이 척박해 백성들이 고생이 많고 풍속은 오랜 세월 변함이 없고 자연에 둘러싸여있어 번화한 도읍이 없다. 나라가 세워진 지 몇 백 년이 되었지만 후세에 이름이 알려진 위대한 인물이 드물고 과거에 급제한 선각적인 인물도 들어본 적이 없다. 단지 예전의 박순근(朴淳勤) 정도뿐이다.
물이 빠지면 그 밑의 돌이 드러나고, 구름이 흩어지면 달이 나온다. 오래전부터 벽촌마을이었던 양양이 갑자기 그 면목을 바꾸어 학교를 설립하여 학문의 필요성을 앞서 외치고 나섰다. 학생들을 모집하는데 완고한 구습을 깨버리니 그 기지가 빛났다.<중략>
양양의 인사들은 작은 성취에 머무르지 말고 더 열심히 분투하여 강원도에서도 으뜸이 되고 전국에서도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 양양은 작은 읍이고 벽지이지만, 오히려 지역 내 여러 군자(君子)는 열악한 조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분발할 수 있다. 우리는 양양인(襄陽人)들의 행적을 치하하고 전국의 동포가 이를 본받기를 장려한다. <1906년 10월 4일 황성신문>
황성신문에서는 현산학교의 월말시험, 계절별 시험도 보도했으며, 성적 우수자는 명단까지 공개했다. 우수성적의 학생들에게는 종이와 붓, 서책 등 학용품을 나눠주어 시상했다.
후대의 사람들은 누가 현산학교를 세웠느냐에 주목하고 현산학교 건립을 남궁억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 물론 이를 부정할 수 없지만, 당시 양양 유림 인사들과 군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후원이 없이는 현산학교 개교가 불가능했음을 신문 기사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비록 1백년 전의 일이지만, 군민의 힘으로 이뤄낸 현산학교 개교는 지역주민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엄경선 설악닷컴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음력 7월20일(양력으로는 9월 8일)에 양양군내에 사립 현산학교가 개학(開學)했는데, 입학한 학도(學徒)가 1백46명이라 넓은 교실이 모자랄 정도로 일장 성황을 이루었다고 보도한 1906년 9월 26일자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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