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기 대표는 둘째 딸 유미 씨가 백혈병에 걸리기 전까지 점차 경제적으로 안정돼 가며 행복한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황 대표는 그즈음 수십 년 동안 살아 노후화된 자택을 수리하기 위해 그 비용을 차곡차곡 모아 놓은 상태였다.
유미 씨는 회사생활에 힘들어 하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올 때면 가족을 위해 옷을 사고 외식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미 씨는 가족을 위해 이렇게 돈을 썼지만 월급을 받으면 대부분 어머니에게 맡겼고 부친 황 대표처럼 절약이 몸에 배어 적은 돈을 아껴 쓰며 알뜰하게 생활했다.
유미 씨는 백혈병에 걸리기 얼마 전 속초에 오게 되면 눈빛이 희미했다고 한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황 대표 내외는 유미 씨에게서 몸이 좋지 않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때가 2005년 5월 말이었다. 유미 씨는 어머니에게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속이 울렁이고 어지럽다고 말했다. 이에 유미 씨 어머니는 약 먹고 손을 따면 좋아질 거라고 일렀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다시 유미 씨가 황 대표 내외에게 같은 증상을 호소했다. 황 대표는 딸에게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 나을 거라고 말하며 딸을 다독였다.
유미씨에게 찾아온 백혈병
처음에 작은 의원을 찾았던 유미 씨에게 의사는 혈액이 이상하다면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유미 씨는 6월 초 아주대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는데 병원에서는 유미 씨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고 부모가 병원에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황 대표 내외는 딸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황 대표는 그때 기분이 매우 찜찜했다고 한다.
의사는 황 대표를 따로 불러 유미 씨의 병명이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고 알렸다. 딸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황 대표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회사택시를 몰던 시절 한 동료의 어린 자식이 백혈병에 걸려 제대로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코피를 쏟으며 죽어간 것을 아는 터라 걱정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백혈병은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백혈병 전문가로서 유미 씨의 병은 충분히 치료 가능하다고 했다. 황 대표는 암에 대해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의사를 믿기로 했다.
황 대표는 처음에 유미 씨에게는 병명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숨기기만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틀쯤 후 딸에게 병명을 얘기했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도 전했다. 황 대표는 혹시나 유미 씨가 치료비 걱정을 할까봐 집수리를 위해 모아놓은 돈과 유미 씨와 유미 씨의 언니가 직장생활하면서 모아놓은 돈도 있다고 말하며 유미 씨의 두려움을 최대한 덜고자 했다. 영문도 모르고 중병에 걸린 유미 씨는 그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유미 씨의 속절없는 눈물은 그러고도 한동안 계속됐다. 유미 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빠지자 이런 상황을 매우 힘들어했다.
모친 운명…아내도 병원 입원
그해 6월 병원에서 유미 씨의 항암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황 대표는 다른 환자의 보호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또 다른 사람이 그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황 대표는 딸이 치료를 받는 동안 그를 만나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병실 입구에는 ‘면회금지’ 표시가 있었다. 드나드는 가족을 만나려 했지만 역시 만나지 못하고 딸의 1차 항암치료를 마친 후 속초로 돌아왔다.
유미 씨가 집으로 돌아오자 유미 씨의 할머니는 손녀를 보고 걱정을 하며 계속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며칠 후 유미 씨의 할머니는 아침에 설사를 했고 황 대표에게 업혀 병원에 갔다가 그날 바로 운명했다. 젊은 시절 가난 속에 고생스러운 삶을 살아온 황 대표의 모친은 자식과 손녀를 걱정하면서 그렇게 세상과 작별했다.
그해 12월 유미 씨가 골수이식수술과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황 대표에게 우환이 하나 더 생겼다. 황 대표의 아내는 배에 물집이 잡혔고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황 대표는 물집 정도는 연고를 발라주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아내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자 이 병이 당시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대상포진이며 마침 아주대병원의 한 의사가 일본에서 대상포진을 치료하는 신기술을 배워왔다고 알려줬다. 황 대표의 아내는 딸과는 다른 층에 입원했고 황 대표는 졸지에 한 병원에 가족 두 사람이 입원하는 상황을 맞았다. 가족들은 두 개의 층을 오가며 간호를 했고 황 대표 아내의 대상포진 치료비는 400만원이 넘게 나왔다. 황 대표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계속 커져만 갔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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