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인권을 말하는 여성은 말투와 태도에서부터 뭔가 남다를 것 같다.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이 말과 행동에 가득하리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는 편견이다. 속초여성인권센터 홍경표 이사장은 언제나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다. 저음의 어조는 온화한 인상을 더한다. 천천히 풀어가는 이야기는 신뢰감을 준다.
홍 이사장은 올해 4월에 3년의 이사장 임기를 시작했다. 올해 60대 중반인 홍 이사장은 ‘여자는 남자보다 몇 걸음 뒤에서 걷는 것이 에티켓’이라는 주장이 통용되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홍 이사장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여자는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 안 되는지 의문스러웠다.
속초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로 인연
고성 백도해변 부근 농가의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홍 이사장은 2003년에 속초성폭력상담소와 인연을 맺었다. 현수막 게시대에서 아동성폭력 예방교육에 관한 플래카드를 보고서 속초성폭력상담소로 전화했다. 당시 교육은 교사를 주된 대상으로 했는데 주부인 자신도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상담소의 실무자들은 가능하다고 했고 홍 이사장은 교사들 틈에서 이 과정을 이수했다. 다음해에는 상담소의 교육이 일찍 마감돼 참여하지 못했고 2005년에 다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2005년은 홍 이사장에게 인생의 전환기였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간 진행된 상담소 교육에서 그는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농사를 짓기에 식재료가 풍부했고 이를 요리해서 아침마다 정성스럽게 챙겨갔다. 점심시간이 되면 호박잎쌈밥, 콩나물비빔밥 등을 들고 엑스포공원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웃음꽃을 피웠다. 이후 홍 이사장은 상담소로부터 자원활동가 제안을 받아 상담소의 일원이 됐다. 당시 밥을 함께 나눴던 이들은 모두 상담소의 활동가가 됐고 지금도 그들 중 상당수가 지역 곳곳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상담소의 다양한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간 성교육 강사로 활동했고 성교육인형극단 ‘민들레’의 일원으로서 아동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적인 인형극을 공연했다. 상담소의 소모임에서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누며 관련 지식의 깊이를 더했다. 2013년부터는 속초성폭력상담소의 구성원들이 주축이 돼 창립한 속초여성인권센터의 이사를 맡았다. 사단법인 속초여성인권센터는 속초성폭력상담소를 부설기관으로 두고 있으며 지금까지 속초 평화의 소녀상 건립,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 속초시민노동단체연대사업 등을 하며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속초여성인권센터와 속초성폭력상담소의 활동에 속초성폭력상담소의 전임 소장인 유혜정 속초시의원의 공헌은 크다. 유 의원은 당찬 추진력으로 기관을 만들고 성장할 수 있게 했다. 그런 한편으로 조직의 발전에 홍 이사장의 역할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와 같이 구성원들 보듬어
홍 이사장은 상담소의 자원활동가로 나선 이후 지금까지 내부 구성원들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가 강조하는 표현대로 하면 그는 사람들을 ‘모두려고(‘모으다’의 방언)’ 애썼다. 어떤 조직이든 이견은 있게 마련인데 홍 이사장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이따금씩 홍 이사장은 식사를 직접 준비해 함께 나누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교류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마치 한 집안의 어머니와도 같이 조용하고 따뜻하게 구성원들을 보듬어 왔다.
홍 이사장은 처음에는 이사장을 맡지 않으려고 했었다. 속초성폭력상담소 김문희 소장과 유혜정 시의원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강하게 권유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요청을 마냥 모른 체할 수 없었다.
홍 이사장은 현재 별도의 거창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 그저 모두가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한다.
“저는 앞으로 칭찬과 좋은 말을 많이 해서 서로 힘을 내게 하고 싶어요. 실무를 하는 이들에겐 이런 말들이 너무도 중요하죠.”
또한 홍 이사장은 더 많은 이들이 속초여성인권센터에 다가오기 쉽게 하려고 한다.
“성폭력, 여성인권을 얘기하면 거리를 두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사람들의 눈높이를 고려해서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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