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고성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만난 관광객들의 표정에는 저마다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DMZ평화의 길’이라고 적힌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드디어 문이 열린다. 66년 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DMZ로 통하는 길이 마침내 비밀의 화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유실, 해안침식 등 각종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느 해변과는 다른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쪽빛 바다와 깨끗한 해안의 모습에 관광객들은 여기저기서 감탄을 자아낸다.
해설사는 “이곳이 천혜의 자연을 가진 고성DMZ만의 멋”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첫 포토존에 도착해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옆에 있던 군인이 “동해 바다 쪽으로만 사진을 허용합니다. 철책 아래나 소초는 촬영을 제한합니다”라고 경고한다.
그제야 바닷가 옆으로 3중으로 늘어진 철책과 곳곳에 숨은 소초가 눈에 들어온다.
철책을 따라 한동안 걷다보니 두 번째 포토존인 동해북부선 옛 철길과 터널이 나온다.
함께 동행한 사진기자는 “부친이 북쪽의 회양군 출신이셨다. 옛날 간성으로 군입대를 하기 위해 이 철길을 이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대구에서 온 방문객은 “5번 신청 끝에 겨우 당첨돼 ‘DMZ평화의 길’을 오게 됐다. 끊어진 철길과 시커먼 터널을 보고 있으니 분단의 아픔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해 울컥했다”고 말했다.
남과 북으로 길게 뻗은 옛 철길을 보며 이 길을 따라 언젠가는 유럽행 기차가 달릴 날을 꿈꿔본다.
다시 끝없이 이어진 철책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세 번째 포토존이 나온다. ‘주의!! 귀하는 지금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로 진입하는 중임’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낮은 턱으로 표시한 ‘남방한계선’이 보인다.
해설사에 따르면 남방한계선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서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씩 후퇴한 지점에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긋고 비무장지대(DMZ)로 정했다고 한다.
완충지대로 계획됐던 DMZ에는 남한은 민정경찰, 북한은 민경대대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군 병력을 배치해 잦은 충돌이 발생했다고 한다.
남방한계선을 넘은지 불과 몇 미터를 지나자 지뢰폭발로 파괴돼 뒤집어진 굴삭기가 나온다.
지난 2016년 합동참모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만발의 지뢰가 이곳에 묻혀 있고 지뢰를 모두 제거하는 데만 470년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1년 중 192일 동안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무인도섬 송도와 평화의 소망을 담은 희망나무를 거쳐 수많은 젊은 군인의 피와 맞바꾼 휴전선 155마일의 최북단 표지석이 있는 금강산 통문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버스로 오른 금강산전망대를 마지막으로 ‘DMZ평화의 길’이 끝났다.
최북단 표지석 옆에는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자필로 쓴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나뭇잎과 열매 문양의 솟대가 서있다.
이 솟대는 평화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해설사의 설명처럼 ‘DMZ 평화의 길’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새롭게 싹트길 희망해본다.
우지현 기자 orrola@hanmail.net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고성DMZ,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쪽빛 바다와 깨끗한 해안을 관광객들이 보고 있다.
DMZ평화의 길로 들어서는 문이 열리고 기대와 설레임에 찬 관광객들이 첫발을 내딛고 있다.
남과 북을 힘차게 달렸던 기차는 간데없고 녹슨 철길과 시커먼 터널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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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DMZ 평화의길’을 세계적 명소로
통일전망대→금강산전망대 / A·B코스 하루 2회씩 개방 / 인터넷으로 참가신청 받아
■‘고성DMZ 평화의길’은=지난 4월 27일 민간에게 66년만에 첫 개방됐다.
도보로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 통문까지 이동해 버스를 타고 금강산전망대를 거쳐 다시 통일전망대로 내려오는 7.9km 구간 A코스와 차량을 이용해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전망대를 거쳐 통일전망대로 돌아오는 7.2km 구간 B코스로 나눠져 있다.
한국관광공사 걷기여행 누리집 ‘두루누비(www.durunubi.kr)’와 행정안전부 디엠지(DMZ) 통합정보시스템 ‘디엠지기(www.dmz.go.kr)’를 통해 참가 신청을 받는다. 경쟁률이 치열하다.
두 코스 모두 하루 2회 운영하며, 해안 철책을 따라 걸을 수 있는 A코스는 1회 20명씩, 차량으로 이동하는 B코스는 1회 80명씩 모집한다. A코스는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실제 방문율은 A코스는 74.7％, B코스는 4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성군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A코스 1,455명, B코스 3,369명 등 총 4,824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군은 향후 철원과 파주 평화의 길을 단계적 개방하고 여론반응 및 안전조치 추진상황 등을 고려해 C코스도 개방할 예정이다. C코스는 통일전망대 안호검문소를 지나 8통문,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를 차량으로 이동하는 왕복 16km코스이다.
■평화 상징 잠재력 충분=DMZ 평화의 길 개방은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남북 정상의 4·27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로 ‘남북 간 긴장 해소’ 차원에서 이뤄졌다.
‘고성 DMZ 평화의 길’은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침체에 빠진 고성군의 지역경제에 청신호가 켜졌음이 분명하지만, 숙박시설이나 음식점, 연계 관광 인프라는 아직 미비하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맞은 독일 베를린 장벽 터가 평화의 상징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고성 DMZ 평화의 길’ 역시 평화 상징의 세계적 명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무너진 잔해와 터만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보다 훨씬 더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고성DMZ는 베를린 장벽 못지않은 평화의 상징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더욱이 지난달 19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31차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계획’ 국제조정이사회에서 고성군과 철원·화천·양구·인제 등 도내 DMZ 접경지역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기대가 더욱 크다.
황명동 고성군 기획감사실장은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을 연결하는 하늘길과 통일전망대, 건봉사, 화진포를 잇는 삼각관광벨트 조성 등 DMZ개발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지현 기자 orro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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