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기 대표는 택시 운전을 하면서 기상이 좋지 않은 날도 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폭우가 내리건 바람이 심하건 발이 빠질 정도의 폭설이건 간에 크게 아랑곳하지 않고 택시를 몰았다.
한번은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서울에 가길 원하는 승객을 태운 일이 있다. 그 승객은 다음날 미국 가는 비행기를 예약해 놓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악천후로 서울 가는 길이 끊어진 상태라 서울행은 불가능했다. 이에 그 손님은 황 대표가 요구하는 대로 얼마든지 돈을 낼 테니 강릉이라도 가자고 말해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이 오는 상황에서도 황 대표는 강릉으로 향했다. 그러나 설악해수욕장 근처를 지날 때 황 대표의 택시 50미터 앞에서 산사태가 있었고 조금만 더 빨랐다면 차가 바다로 빠질 뻔했다. 결국 그렇게 길이 막히는 바람에 그날은 강릉까지 가지 못하고 빗길을 되돌아 와야만 했다.
공동묘지 옆 길가서 담배 찾는 사람
비가 많이 오던 또 다른 날 밤에는 장천마을에서 무서운 경험을 했다. 통행금지가 있을 때라 자정이 다돼 차량 운행을 그만하려는데 집까지 가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만났다. 황 대표는 사정이 딱해 보여 그 사람을 태웠는데 목적지가 장천마을이었다. 장천마을에는 길 양쪽으로 공동묘지가 있어 밤에는 좀처럼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다. 그렇게 장천마을에 갔다가 나오는데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택시를 몰고 있는 황 대표를 향해 저 멀리서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날은 바람도 강해서 공포감은 더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귀신보다는 사람 같아 보였고 차를 세워 창문을 조금 열고 그 사람과 말을 해보니 그는 황 대표에게 담배를 달라고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늦은 밤, 흰옷을 입고서 공동묘지 옆 길가에 서서 담배를 찾는 요상한 사람을 만난, 특이한 경험이었다.
바람이 몹시 세차던 어느 날에는 밤 1시가 넘어 토성면 잼버리수련장 앞에서 한 사람을 맞닥뜨렸다. 그 사람은 인제 용대리에 가서 자신의 일행 한 명을 데려와 달라고 얘기했다. 바람이 몹시 셌기 때문에 용대리까지 가기가 힘들었지만 그 사람의 요청이 간곡해서 결국엔 용대리에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잼버리수련장을 얼마 안 남겨두고 택시 안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대명리조트를 지날 때쯤 뒤에서 '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뒷좌석 작은 유리창을 깨고 주먹 정도 크기의 돌이 승객 무릎을 덮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차가 조금 파손됐을 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어느 겨울날은 손님을 태우고 간성에 갔다가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도로가 막혀 아야진 인근에서 밤새도록 차를 세우고 있어야만 했다. 그날은 폭설에 대비해 연료를 많이 넣어 놓아서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어 겨울밤을 춥지 않게 버틸 수 있었다. 미처 대비 못한 다른 운전자들은 눈 속에 갇혀 폭설과 추위에 힘들어했다. 이렇게 황 대표가 눈밭이 돼버린 도로에서 밤을 보낸 일은 이날 말고도 여러 번 된다.
폭설로 도로에 버려진 택시 옮겨
80년대 후반 회사택시를 몰던 시절의 어느 겨울날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자칫하면 눈 속에 파묻힐 뻔한 적도 있다. 눈이 어찌나 많이 내리는지 택시의 와이퍼가 부러졌고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어 바깥을 보면서 회사까지 겨우 갔다. 그런데 이날의 일과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날 같은 회사 소속의 한 기사가 폭설에 운전이 힘들어 택시를 도로에 버린 채로 퇴근해버렸고 황 대표는 본인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임에도 다른 기사들과 함께 차를 찾으러 현장으로 출동했다. 택시가 버려진 현장에서는 차고지로 가려던 버스 10여 대가 택시 때문에 길이 막혀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바람도 세고 우박까지 내리면서 얼굴을 때려 너무 아팠지만 삽으로 눈을 치우고 바퀴에 체인을 감은 후에 다른 차들이 남긴 바퀴 자국을 따라서 고생스럽게 차를 회사까지 가져다 놨다. 그런데 회사에서 집까지 가는 것도 문제였다. 밤 11시에 눈은 이미 가슴 높이까지 쌓였고 그러고도 계속 눈발이 이어졌다. 회사에서 집까지 400미터 거리인데 도저히 귀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눈을 헤치면서 걸었고 걷다가 지쳐서 다른 집에 들어가 언 몸을 잠시 녹였다. 그리고 다시 눈밭을 헤치면서 걷다가 눈발이 너무 세서 자택이 있는 골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황 대표는 집을 코앞에 두고 지쳐서 이웃집 문을 두드려 자는 사람들을 깨워 다시 휴식을 취했다. 그 집 주인이 끓인 물을 내줘서 마시는데 뜨거운 느낌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온 몸이 얼어 있었다. 그렇게 따뜻한 온기를 쬔 후 약간 비탈진 짧은 거리를 걷지도 못하고 기어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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