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문우당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참가했다. 행사가 끝난 시간이 오후 5시. 동창회 모임 시간은 6시 30분인데, 남은 시간 보내기가 참 애매했다. 그래서 모임 장소까지 아주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길을 건너 칠성조선소를 들렸다가 석봉도자기 앞의 청초호 전망대에 들렸다. 황룡과 청룡을 쳐다보며, 지금 저 용들이 청초호와 영랑호에 진짜 살고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없는 궁금증을 즐기며 청초호 옆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공사 현장이 있어 가까이 가 보았다. 미루어졌던 어린이 교통안전 체험교육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하나라도 더 생기는 일은 좋은 일이다. 다시 공원길을 따라 천천히 둘러보며 걷기를 했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다소 맑아지는 느낌이다. 다리 난간에 서서 청초호와 청초천이 만나는 물길 위를 바라보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공중돌기를 하거나 물밑에서 반짝이는 비늘의 움직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눈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다시 걸음을 옮겨 철새 조망대에 들렸다. 계절 탓인가 새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엑스포 광장에서 전동차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상징탑 광장에서 분수대 광장으로 가는 공원길에는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분수대는 시간 탓인가 오늘도 여전히 물을 뿜어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고장이 물 부족 도시라는 것은 알지만, 늘 잠들어 있는 분수대를 보는 일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분수대 밑에 ‘파란 분수’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고래 한 마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떨까? 놀이터를 지나는데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롯데그룹과 초록우산 재단이 함께 만드는 어린이 안심 놀이터 공사를 6월 말부터 시작하니 공사 중 불편함이 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그런 좋은 공사는 얼마든지 불편함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좋은 놀이터나 만들어 주세요.’ 혼자 중얼대며 시간을 보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공원의 거의 끝자락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 속초를 찬찬히 눈에 담기 시작했다. 불쑥 혼잣말이 또 튀어 나왔다. ‘참 많~이 망가졌네!’
공원길을 걸으면서 문득 떠올랐던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꽤 오래 전, 우리 지역 출신의 유명 시인의 문학관 건립과 시비 건립이 논의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이 갈려 결국 추진되지 못하고 무산 된 바가 있었다. 몇 년 전 작고하신 모 시인의 시비 건립도 그 과정이 순탄치가 않아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치고 처음 계획과 다르게 어렵게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이곳 엑스포 공원 구석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던 유정충 선장의 동상이 청호동으로 자리를 옮겨 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런데 작년에는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필자에게 문학 강의를 들은 지인이 어느 날, 문자를 보내 왔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선생님! 청호동 바닷가에 시비가 세워졌는데, 혹시 알고 계세요?’ ‘시비? 누구 시비?’ ‘지금 우리 지역에도 청호동을 노래한 훌륭한 지역 시인들도 많은데, 왜 이런 시비가 섰는지 화가 나서 선생님께 연락 드렸어요. 시 내용도 청호동하고 관계도 없어요. 단지 제목만 그래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급히 청호동 바닷가를 가 보았다. 그리고 그 시비가 서게 된 과정을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부끄러웠다. 우리 고장 출신도 아니고, 우리 고장에서 어떤 문화 활동도 하지 않은 외지 시인의 시비가 청호동 바닷가에 우뚝 세워질 때까지 우리 지역 문인들은 아무 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참담했었다. 개인의 사유지도 아닌 공유지에 어떤 행정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심지어는 시비가 세워진 사실조차 모르는 행정의 무관심에 화가 났었다. 과정과 절차가 무시된 것이 화가 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호숫가 긴 의자에 앉아 이른 저녁 꿈을 꾼다. 이 곳 엑스포 공원에 속초 문화·예술·역사를 아우르는 공원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다른 지자체처럼 문화예술 공원에 관한 조례 만들려고 노력하는 의원님 한 분 만나면 좋겠다. 지역 예술가의 시비, 조각품, 지역 원로의 기념비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문화공원을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열린 마음 가진 행정가 한 분 만나면 좋겠다.
어, 시간이 다 됐네. 모임 가서 매운 양념족발과 시원한 막국수나 먹고 꿈 깨자!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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