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비포장길이 많았고 타이어의 내구성도 좋지 못해 타이어에 구멍이 나는 날이 적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번씩 펑크가 났고 이를 메우다 보면 영업을 못해 매출이 확연히 줄었다. 여기에 더해 타이어 수리비는 회사가 아닌 기사가 부담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택시가 LPG를 연료로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휘발유를 넣어야만 해 매출의 거의 절반을 유류비로 지출했는데 이 점도 기사들에겐 큰 부담이었다. 주유비를 아끼기 위해 저렴한 대체제인 ‘솔벤트’를 넣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솔벤트’를 때고 나면 차량에 그을음이 너무 많이 껴 이를 제거하느라 애를 먹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택시회사에서 기사들을 압박하는 정도가 심해졌다. 사장이나 관리자는 기사들이 그날 하루 벌어온 돈이 적을 경우 강하게 질책했고 종종 기사들이 가지고 온 돈을 집어 던지며 모욕감을 줬다. 그리고 밤 12시가 지난 시간에 기사에게 윽박지르고는 돈을 더 벌어 오라며 기사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당시에는 택시회사들이 ‘자율입금제’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기사들이 벌어온 돈이 적으면 그 기사에 대해서는 급여를 가불한 것으로 처리했다. 따라서 자율입금제는 ‘자율’이 아니었고 실제로는 상당히 강압적이었다. 황 대표 역시 한 달 내내 일했어도 가불 처리 때문에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마음이 약한 어떤 기사들은 그날 매출이 적을 경우 회사에 급여를 가불한 것으로 해달라고 먼저 나서서 얘기했다. 그런데 기사가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어가도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없었다. 회사에서는 돈을 잘 벌지 못하는 기사에게는 배차를 해주지 않았고 월급은 일당으로 계산해서 일하지 못한 날짜만큼 빼고 줬다.
‘자율입금제’에서 ‘사납금제’로 바꿔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온 것은 1987년이다. 그해에는 연초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그리고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으로 연결됐다. 회사택시 종사자들은 시위 뉴스를 보고 용기를 얻었고 황 대표가 다닌 회사에서는 그해 7월 말 분규가 시작됐다. 택시노동자들은 더운 여름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때에 속초 중앙로 서독약국 앞에서 한껏 가열된 도로에 누워 길을 막고 시위를 벌이며 강경하게 쟁의를 이어갔다. 경찰 측에서는 기사들이 어서 빨리 회사와 합의하도록 종용했지만 회사에서는 기사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았고 8월 초에는 흥분한 기사들이 회사에 주차된 택시를 때려 부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택시기사들의 주된 요구사항은 ‘자율입금제’를 사납금 제도로 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법인택시기사들을 위해 정책적으로 사납금제 폐지와 월급제 도입이 검토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황 대표가 다닌 회사에서는 8월 중순에 노사 간 합의가 이뤄졌고 다른 회사들도 기사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 사납금제가 시행됐다.
1987년 이후 사납금 제도가 시행된 초기에는 기사들이 정해진 금액만 회사에 내면 됐기에 심리적 부담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오래 가진 못했다. 사납금은 이후에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높아져 기사들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랐고 기사들은 다시 열악한 처지에 놓였다.
택시 운행 여건 악화는 택시운전사의 연령대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황 대표가 스물여섯에 택시운전을 시작한 때에는 20대의 젊은 운전기사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60대 기사들이 흔한 상황이다.
개인택시 몰며 평범한 가정 이뤄
황 대표는 1994년에 개인택시면허를 받았다. 원래는 더 일찍 받을 수 있었지만 관련법이 계속 바뀐 데에다가 자신이 다닌 회사의 분할로 근속 기간을 충족시키지 못해 개인택시면허 발급이 미뤄졌다.
황 대표는 개인택시면허를 받고 본인의 첫 차를 구입했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차량 탁송료를 아끼기 위해 인천까지 차를 인수하러 갔고 속초에 도착하니 자정이 다 됐지만 그때 그는 과일을 사와서 자던 애들을 깨워 부모님과 함께 작은 잔치를 벌였다.
개인택시를 몰게 됐어도 황 대표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오전 8시가 되기 전 일하러 나갔고 점심과 저녁은 집에 가서 먹고 새벽 1시까지 일했다. 차를 할부로 받아온 터라 다달이 할부금을 갚아나가야 했지만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면서 꾸준히 적금을 부을 정도는 벌 수 있었다. 개인택시를 몰면서 황 대표는 먹고 사는 고민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어린 자식들 또한 크게 속을 썩이지 않아 드디어 자신이 바라던 평범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생업에 매진하고 한없이 검소한, 한 평범한 가장의 삶은 언제까지고 그렇게 계속 될 듯 보였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지난 10일 속초시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열린 6·10민주항쟁 32주년 기념식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공로패를 수상한 황상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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