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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 보훈의 달, 슬픈 팥 시루떡
등록날짜 [ 2019년06월10일 11시20분 ]
유월이다. 대한민국 백성에게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6.25전쟁 69주년을 맞아 속초시기독교연합회와 한국보훈선교단 강원지부 속초지회가 보훈가족 위로회 및 나라사랑 기도회를 연다. 300여분 참석을 예상하는데 매년 행사기념품이 고민거리다. 수년간 우산, 수건, 시계 그리고 경품으로 TV, 자전거, 식사권, 지역상품권, 리조트숙박권 등을 회원들로부터 협찬 받아 풍성히 행사를 준비해왔다.
그런데 올해 기념품으로 무엇이 좋을지 보훈단체에 의견수렴을 해보니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기념품과 경품보다는 팥 시루떡을 푸짐하게 들고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준비하고 진행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생각이 많이 부족했다. 경품을 받지 못한 분들의 섭섭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전적으로 불찰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팥 시루떡을 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팥 시루떡은 우리 잔칫상에 대표적인 음식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팥 시루떡은 늦가을 농사추수를 마치고 일 년에 딱 한번 해먹는 별미였다. 봄에는 쑥 개떡, 그리고 형편이 좀 나으면 쑥버무리를 해먹었지만, 팥 시루떡은 그만큼 고급음식이었다.
왜냐하면 쌀이 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혼식장려운동으로 보리쌀이 30%가 넘었는지 선생님이 매일 도시락 검사를 했다. 그러니 팥 시루떡은 참 귀했다. 떡 하는 날을 잡고, 어머니께서 전날 불린 쌀을 읍내방앗간에서 빻아 저녁 무렵 시루에 쌀가루와 팥고물을 켜켜이 쌓아올리고 쌀겨와 밀가루 반죽으로 무쇠 솥과 시루 사이를 메우셨다.
떡이 잘 익었는지 판단은 온전히 어머니 몫이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서린 시루떡 한조각의 맛을 잊을 수 없다. 호롱불을 밝혀 집집마다 이웃에 떡 심부름을 나갔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지만 나누는 정은 뜨거웠다. “떡 가져왔어요!” 외치면 대문이 금방 열렸다. 아무개네 떡 한다는 소문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기 때문이다. 기대에 찬 밤이었다.
그 무렵 정부는 통일벼 소주밀식을 권장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소주를 몰래 먹는 것으로 오해하겠지만, 통일벼를 심을 때 모수는 적고 조밀하게 심어 재배밀도를 높이는 다수확 방법을 말한다. 통일벼라는 이름도 남북통일이 아니고, 다수확 통일벼를 모든 부락이 다 함께 통일해서 심자는 캠페인의 의미였다. 그 만큼 쌀이 귀했던 시절이다. 
영양도 많이 부족했다. 제일 부러웠던 것은 양계장 집 아들이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눈에 띠는 달걀부침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친구의 장딴지는 영양상태가 좋아서 유난히 매끄러웠다. 거칠고 풀숲을 다니느라 긁히고 윤기 없는 내 다리와는 많이 달랐다. 어릴 적 가난과 관련된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많이 축적되어 있는 것 같다.
통일벼 식량증산 덕에 찰기는 없지만 배고픔은 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가 되었다.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전기가 들어오고, 먼지가 풀풀 나던 신작로가 포장되었다. 조국 근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선진국 문턱까지 부요한데, 풍요 속에 빈곤인지 2019년에도 여전한 사회갈등은 유월을 무겁게 하고 있다.
팥 시루떡은 배고픈 시절의 회상이다. 떡 꾸러미는 생존본능의 가족 사랑이다. 가난했던 기억의 잠재적 투영이다. 우리 어머니가 잔칫집에 다녀오실 때 흰색 무명치마 속 몸빼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놓으시던 신문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무지개떡, 두부부침, 눈깔사탕 뭉텅이가 바로 그것이다. 용케도 예민한 혀는 신문지를 퉤 골라내었다. 필자세대가 그랬으니 6.25 참전세대는 어떠했으랴? 그래서 경제부흥을 이루었다. 그렇게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날 더운 날씨 때문에 슬픈 팥 시루떡은 콩설기 떡으로 대신했다.
최철재
경동대 교수·이학박사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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