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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택시운전사 황상기의 살아온 이야기<1> – 자랑스러운 속초시민
동생 업고 밤새 일하던 소년
등록날짜 [ 2019년06월03일 09시30분 ]

속초의 택시운전사 황상기(사진) 씨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목소리는 온화하고 어조는 겸손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다.
한편, 황상기 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한 사회단체 ‘반올림’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딸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삼성전자와 이 사회의 제도적 폭력에 맞서 싸워왔다. 그는 지난달 21일 속초 시민의 날을 맞아 노동자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속초시 자랑스러운 시민상’(인권·평화부문)을 수상했다.
선량해 보이는 한 사람이 어떻게 투사가 됐을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10년 넘게 거대한 힘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흔히들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하는 지금, 그는 왜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고 얘기하는 것일까?

아버지 따라 오징어잡이배 타
60대 중반인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충남 대덕군 유성면(현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속초로 이사 왔다. 속초로 오기 전 그의 가족은 서울에서 뜻밖의 일을 당하는데 이 일은 가족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성에서 농지를 팔고 가족을 데리고 상경한 그의 부친은 전차를 기다리다가 농지 판 돈을 고스란히 잃어버렸다. 전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선 부친 주위에 젊은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다가 사라졌는데 전대도 함께 없어졌다.
이후 그의 가족은 오랜 시간 가난의 질곡을 견뎌야만 했다. 황 대표의 가족은 돈을 잃은 이후 춘천으로 가서 2년 정도 살다가 속초로 옮겨왔다.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은 교동에 골조만 남아 있던 빈 건물에 들어가 살 정도로 궁핍했다. 양친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여러 가지를 하려 했지만 일거리가 많이 없었고 가족들은 끼니 걱정이 다반사였다. 시집 간 배다른 누님 두 사람을 빼고 사실상 맏이인 황 대표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일을 도왔다.
황 대표의 모친은 임신한 상태에서도 고된 일을 해야만 했다. 모친은 황 대표와 띠동갑인 동생을 가졌을 때 밤새도록 노가리와 도루묵을 손질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동생을 낳던 날도 생선을 손질하러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출산했고 3일 정도 쉰 후 다시 일했다. 띠동갑 동생이 태어난 이후에는 황 대표가 어머니의 일터에 따라 갔다. 모친이 생선을 손질하고 있으면 황 대표도 잠을 자지 않고 어머니 옆에서 띠동갑인 동생을 업고서 생선을 줄에다 끼는 일을 거들었다. 그러다가 노가리를 뜯어서 불에 구워먹기도 했는데 그 맛이 아주 꿀맛이었다.
얼마 후에는 아버지를 따라 오징어잡이 배를 타기 시작했고 열다섯 무렵에는 혼자서 다니게 됐다. 당시 그 정도 또래의 소년들이 배를 타는 경우는 흔했다. 사람들은 학교에 가듯이 오후 3~4시면 도시락을 싸들고 부두로 모여들었다. 당시 오징어는 낚시로 잡았다. 조그만 배에 사람이 20~30명씩이나 탔고 사람들의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배 안이 복잡했다. 오징어 배는 해마다 5~6월부터 조업을 시작해 겨울이 다가오면 남해안까지 내려갔다.

너무 가난해 학교에 다닐 생각 못해
황 대표는 68년 해일이 난 후에는 청초호 연안(청초호 매립 전 지금의 삼천리주유소 근처)에서 배 만드는 일을 보조했다. 해일로 많은 배들이 파손돼 배를 새로 만드는 데 인력이 필요했는데 동사무소에서 요즘으로 치면 공공근로처럼 사람을 모집해 일할 수 있게 했다. 아직 어렸던 황 대표는 배 목수의 심부름을 맡아서 목재와 공구를 옮겼다. 그렇게 심부름을 하는 소년들이 여러 명이었다. 황 대표는 이 일을 하는 동안은 집에서 리어카를 몰고 갔고 일을 마치면 버려진 목재를 집으로 싣고 왔다. 큰 목재들은 어른들이 거의 다 가져가고 부스러기만 겨우 챙겨 올 수 있었지만 작은 나뭇조각들은 집에서 땔감으로 유용하게 쓰였다.
 열다섯 무렵 황 대표는 만천동 인근 밭터에 가족들과 함께 집을 지었다. 진흙을 파서 흙벽돌을 직접 만들었고 벽돌을 쌓은 다음 시멘트를 바르고 가마니를 둘러서 방 한 칸, 부엌 한 칸짜리 집을 완성했다. 지붕은 짚으로 만들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새끼줄로 단단히 묶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폭우가 쏟아진 적이 있는데 한쪽 벽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마침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있어서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황상기 대표는 어린 시절 집이 너무 가난해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을 못해봤다. 춘천에 살던 동안 잠깐 학교에 다녔지만 속초에서는 아이임에도 먹고 사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기 힘들었다. 황 대표는 양친을 도와 일을 해야만 했고 황 대표의 이러한 희생으로 네 동생들은 모두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는 이와 같이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이 있음을 어린 나이에 이미 보여줬다. 그리고 먼 훗날, 황 대표는 학교 공부 못지않게 가치 있는 배움의 길이 있음을 그의 삶으로 보여주게 된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campin@hanmail.net 

황상기(맨 오른쪽) 씨가 지난달 21일 열린 속초시민의 날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시민상을 수상하고 수상자들과 김철수 시장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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